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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다 줄라이의 ‘카조니어’: 부모자식

이상 가족과 한 여성의 성장 스토리

by 미미
카조니어 포스터

코비드 시기에 오면서 비행기 안에서 본 영화. 보면서 뭔가 이상하고 요상하지만 빨려 들어가서 멈추지 못했던 영화, 바로 ‘카조니어’이다.


카조니어란 단어가 낯설어 찾아보니 밀리어네어 빌리어네어처럼 무지하게 부자인 사람을 칭하는 말이라고한다.


포스터도 이상하고 영화 제목도 이상하고 영상도 계속 이상했다. 쓰고 보니 매우 일관성 있는 영화군... 주인공인 올드 돌리오와 그의 부모가 묶고 있는 사무실 내벽에 분홍색 거품이 흘러내리는 것 하며, 옆 공장 관리인에게 들키지 않게 낮은 벽을 몸을 굽혀서 지나가는 장면이라던지, 뭔가 아 이건 환상적 요소가 들어간 영화인가?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옆 공장에서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거품
공장주에게 걸리지 않게 낮은 담을 지나가는 장면 괴기스러움


올드 돌리오는 그의 이름도 로또 당첨된 사나이의 이름에서 따와서 지었다. 혹시나 같은 이름을 갖게 되면 뭔가 콩고물이 떨어질까 하고. 딸에게 그런 요상한 이름을 붙이는 부모는 대체 어떤 부모일까? 부모란 어떤 존재인가? 생물학적으로 낳으면 부모인가? 부모는 자식에게 어떠한 권한을 갖는가? 이 모든 질문들이 영화를 보는 중 떠오른다.


영화가 전개되면서 점점 이 부모에 대해서 이 가족에 대해서 이상함을 감지할 수 있다. 초반부터 이 가족은 좀스러운 사기를 치러 다닌다. 그 사기를 치는데 그들의 딸 올드 돌리오를 이용한다. 가족으로 이루어진 삼인조 좀도둑 사기단. 그들은 이렇게 노인들 대상으로 사기를 치러다면서 어느 날 올드 돌리오는 사기 칠 요량으로 마사지사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거기서 현금으로 줄 게 없다며 마사지를 해 줄 수 있다고 제안하는 마사지사. 올드 돌리오는 마사지사가 자신의 등을 건드리지 마자 생전 처음 느껴보는 사람의 터치에 마음이 이상하게 요동치는 것을 느낀다. 사람의 손길을 받아본 적 없는 올드 돌리오. 스파시설에 근무하던 외국인 친구가 내게 한 때 해준 말이 떠올랐다. 어떤 사람들은 손길이 닿으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는 것. 우리의 몸에 닿은 사람의 손길에는 종종 뭉쳐진 감정을 풀어내 주는 힘이 있다. 감독도 이걸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장면을 영화 안에 배치한 듯하다.


이 가족은 공장 옆 사무실에서 생활하는데, 그곳의 월세를 내지 못해서 계속해서 공장 관리의 압박을 받고 피해 다닌다. 심지어 그 사무실이란 곳은 제대로 설계가 되어 있지 않은지 공장이 가동될 때마다 분홍색 거품이 흘러내린다. 이 가족은 결국 뉴욕행 비행기를 탑승하면서 수화물 분실로 돈을 청구할 사기를 생각해내고,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한다. 이 곳에서 올드 돌리오의 아빠(라고 부르기가 참 거시기하지만) 옆에 바로 멜라니(지나 로드리게즈 a.k.a 제인 더 버진 주인공)가 자리한다. 그녀는 비행 내내 쉴 새 없이 떠들며, 밝고, 따뜻한 분위기를 매우 발산한다. 그리고 희한하게 이 가족이 사기단임을 알아내고 멀리하는 게 아니라 이를 ‘재밌어’하며 그들의 일에 가담한다. 이 부분은 억지스러웠지만 감독에겐 영화 전개에 있어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 멜라니는 이들과 같이 일을 벌이러 다니다가 점점 이 가족이 지극히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고 올드 돌리오가 사실을 직시하도록 이 곳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인물이다. 현실세계의 상담사 역할.


멜라니는 올드 돌리오가 부모한테서 분리되도록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게 한다. 올드 돌리오의 부모는 그녀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그녀를 끊임없이 회유한다. 처음에는 전화를 통해서 이후에는 선물을 통해서 그녀를 다시 손아귀에 넣으려고 한다. 감독은 올드 돌리오가 부모에게 지속해서 이용당하면서도, 세뇌당해서 그들을 끊지 못하고, 끊었을 때 안절부절못한 그 사실적인 모습을(이렇게 해도 괜찮은 건지 끊임없이 부모의 수긍을 인정을 바라는) 영화에 담았다. 이용당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건 그동안 올드 돌리오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부모의 욕구, 필요를 위해 살아온 존재였기 때문이다. 부모의 무의식적인 계획 아래... 멜라니는 건전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인물로, 그 불온한 관계를 끊어내라고 독려한다.


사람의 손길이라는 소재는 계속해서 이 영화를 관통한다. 올드 돌리오는 예비부모교육에 대리 출석하면서 돈을 받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신생아가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모성을 느끼면서 엄마에게 안겨있는, 가슴팍으로 기어가는 장면을 배우게 된다. 그녀는 멜라니와 생활하면서 부모에게서 분리되고 처음으로 자유로움을 느낄 때, 신생아가 기어가는 포즈를 연출한다. 연출 장소가 좀 뜬금없지만 자궁을 상징하는 어두운 정유소 화장실에서 기어 나와 문을 열고 밝은 세상 빛으로 나오면서 그 정유소 바닥을 기어나간다. 그리고 그녀는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낀다. 여기서 그녀의 표정의 변화를 볼 수 있는데, 종전 부모와 생활할 때의 무표정함에서 서서히 인간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인간의 표정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정유소의 편의점에서 흥분해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을 것을 고르는 장면에서도 그녀가 처음으로 자유로움, 기쁨을 느끼는 상황이 연출된다.


영화이기에 극단적으로 표현했지만, 실생활에선 덜 노골적이어서 알아차릴 수 없는 건강하지 못한 착취와 피착취의 관계, 그리고 착취당하는 사람의 정서를 보여준다. 왜 오랫동안 묶여있던 동물이 풀어줘도 자유롭게 예전의 자유로운 상태를 회복하기가 어려운지. 올드 돌리오는 여기서 부모의 정서적 노예다. 사고의 기능이 멈춤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정서적 노예. 그리고 한 인물을 통해 그곳에서 탈피하고 성장해나가는 이야기이다.


올드 돌리오는 스무 살가량의 나이지만, 이제 막 자신을 탐구해나가고 알아나가는 신생아와도 같다. 영회이기에 소재들은 극적으로 표현되었지만, 감독은 건강하지 못한 관계들의 아픈 단면을 너무나 잘 그려내고 있다.


특히 올드 돌리오의 엄마는 남편이 멜라니를 마음에 들어하자, 그녀와 남편이 함께할 수 있게 목욕물을 준비하는 장면(그 어두침침한 사무실 내 공간), 이를 경악스러워하는 멜라니와 대조적으로 그들 부부에게 이러한 일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 상황. 이 부부는 별도의 개체로 기능하기보다는 서로를 동일시하는, 경계선이 없는 하나의 덩어리로 기능하는 듯 보인다. 종종 뉴스에도 이러한 부부들이 존재한다. 서로의 범죄에 가담하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런 부부. 뭔가 이 장면은 손발이 오그라들었던 장면. 멜라니의 표정이 생각난다. 더러운 것을 봤다는 그 표정.


이 가족의 모습

올드 돌리오의 파리한 창백한 피부빛, 그 얼굴을 반쯤 가리는 한 번도 자른 적 없어 보이는 치렁치렁한 긴 머리와 가운데 가르마, 몸에 맞지 않는 벙벙한 옷차림.


다리를 절고 다니는, 완고해 보이는 표정의 올드 돌리오의 엄마 데레사, 반쯤 벗어진 머리의, 주름이 자글자글한, 뭔가 깔끔해 보이지 않는, 안경을 쓴 아빠 로버트.


그리고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밝음을 가진 존재 멜라니. 올드 돌리오가 멜라니의 빛을 받아 점점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하는 이 성장 스토리는 어렵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만, 조금씩은 이 세상 속 존재하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어 눈을 떼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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