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서 설레임으로
우리 집은 바닷가 바로 앞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릴 적부터 물에 들어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푸르기보단 검은색에 가까웠던 바다가 무서웠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는 눈 깜짝할 사이에 나를 잡아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연히 바다에 들어가게 되면 바닷속에 있는 것들이 나를 잡아당길 것만 같았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바닷가에 가더라도 평상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쉬는 것이 제일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해가 질 무렵 가족과 함께 바닷가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당시 내 나이는 열 살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고기를 맛있게 먹고선 평상 위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아빠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아빠의 손에는 검은색 튜브가 들려있었고, 나는 본능적으로 아빠의 말을 못 들 은척 했다. 심장 소리가 커져갔다. 쿵쾅쿵쾅. 물에 빠진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물이 무서웠다. 그리고 이날 이후로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 1위에 바다가 등극했다.
아빠는 술에 얼큰하게 취하셔서 엄마 뒤에 숨어있는 나를 데리고 파도가 치는 곳까지 데리고 가셨다. 나는 안 가겠다고 생떼를 썼지만, 이미 아버지는 큰 맘을 먹으신 듯했다. 바닷가 앞에 살면서 수영을 못하는 게 말이 되냐는 말을 자주 하셨더랬다. 형은 이 모든 과정을 바다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웃기는지 큰 소리로 웃어대는 형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빠는 나를 검은색 튜브에 태우고선 조금씩 육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튜브에 탄지 얼마 안 되어서 육지는 저만치 멀어졌고, 고사리 같았던 손은 튜브의 양 끝을 꽉 잡고 있었다. 이 손을 놓으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정말 꽉 움켜쥐었다. 아빠는 뒤에서 튜브를 밀면서 연신 괜찮다고 이야기하셨다.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는 내 모습을 보시고는 괜히 미안했는지 이내 방향을 다시 육지로 틀었다. 이때 조금 높은 파도가 밀려왔고 나는 물을 조금 먹고서는 놀래서 두 손을 놔버렸다. 그리고선 검은색 바닷속으로 조금씩 빨려 들어갔다. 아무것도 나를 잡아당기지 않았지만 서서히 바닷속으로 향했고, 그 이후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눈을 떴을 때는 모래사장 위였고, 아빠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있었다.
울음이 터졌다. 정말 엉엉 울었다. 그렇게 물과는 영원한 이별을 약속했다. 그날 이후로 거의 20년은 물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수영장은 물론이고, 바다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계곡에 가끔 놀러 갔지만 물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오던 내가 수영장에 등록했던 건 불과 얼마 전이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중에 내 아들이, 내 딸이 물에 빠지면 나는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물에 빠진 나를 구했다.(그전까지 아빠 때문에 물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믿었지만, 갑자기 아빠가 나를 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아빠였다면 나는 내 자식을 구할 수 있을까?'라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고, 수영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물이 가장 무서웠던 아이는 조금씩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노력했다.
아내와 유럽여행 중 베네치아에 들렸다. 바다 위에 떠있는 대표적인 수상도시인 베네치아는 어딜 가나 흔한 자동차 한대 없는 곳이었다. 거리는 다리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고, 수상버스, 수상택시, 자가용 보트 등을 이동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어쩌면 전 세계에서 나와 가장 맞지 않는 곳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내와 함께라서인지? 아니면 베네치아의 로맨틱한 풍경 때문이었는지? 그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두려움이 설레임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물 위에 떠 있는 도시 베네치아.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잔잔한 바다에게 보호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산 마르코 광장의 산 마르코 성당
산 마르코 광장은 로맨틱함이 곳곳에 숨어있다
위로는 파란 하늘이 아래에는 파란 바다가
물이 이렇게 낭만적일 수 있을까 1
물이 이렇게 낭만적일 수 있을까 2
알록달록한 색은 멋진 그림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베네치아를 여행하는 동안 물은 항상 내 옆에 있었다.
서먹했던 첫 만남은 잊은 채 물과 함께인 풍경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두려움이 설레임으로 바뀌었다.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마음이지요.
저는 오랫동안 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어요. 물 이야기만 나와도 민감하게 반응을 하곤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물론 물이 익숙하진 않아요. 수영을 배우긴 했지만, 아직 숨 쉬는 방법을 제대로 터득하지 않아서 허우적거리고 있지요.ㅎㅎ 그래도 예전만큼 물이 무섭거나, 두렵진 않은 것 같아요. 그 가운데 베네치아는 참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검은색으로 보였던 바다가 파랗게 보이기 시작했던 곳이거든요.
누구나 저마다의 두려움이 마음한켠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참 두렵지요. 그런데 그 두려움이 사라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다만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동안 오랜 시간이 흘러갔을 뿐이지요.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