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재회

첫차를 타고

새글 에세이시

by 새글

첫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첫 열차는 한파와 폭설을 배경으로 깔아놓고 서행 중이다. 지연 안내 방송을 정차역마다 들으며 눈보라를 뚫고 그래도 갈 수 있다는 현실에 안도한다. 앞으로 몇 번의 회의 참석을 위해 새벽기차를 타고나면 서른 해를 넘겨 다녔던 직장에서 퇴직을 해야 한다.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 먼저다. 그동안의 세월이 보람되기보다는 고되었나 보다. 다른 시작을 위한 준비는 하지 않았다.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볼 생각이다. 수없이 세우고 무너뜨렸던 계획에서 자유로워질 계획이다. 헐겁게 마음을 풀고 살아볼 참이다. 느긋하게 삶을 관조하며 남아있을 시간과 대화를 하며 지내볼 것이다. 옥죄기만 했던 생활의 긴장을 풀어놓고 나태해져 보고 싶은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매섭게 눈이 내리고 있으리라. 불빛이 없어서 보이지 않는다고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차창에 부딪쳐 흩어지는 눈송이가 금세 액화한다. 내 여생도 이전과는 다른 상태로 진화를 시도하게 되리라. 열차가 종착역에 도착할 때까지 눈을 감고 새벽의 피로로부터 이탈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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