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으로 산다는 것

새글 김경진 에세이시

by 새글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


새로운 근무지로 온 지 십여 일 만에 집에 가는 날이다. 어디에서 일을 하든 적응은 하겠지만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생활에 치여 마음이 어수선해지는 것은 어쩌지 못하겠다. 지금 나를 사로잡고 있는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는 것이 설렌다는 생각이 어색하다. 나는 항상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왔다. 집을 멀리 두고 떠돌며 주말에나 혹은 여의치 않으면 한 달에 한두 번 집을 소풍 가는 것처럼 들리며 살았다. 가정에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다. 직장 근무지가 광주에, 서울에 때론 전혀 예기치 않은 곳으로 발령을 받기 때문이다. 떠도는 삶이 이제는 싫다. 이방인처럼 연고가 없는 곳을 전전하다 청춘이 다 갔다. 나 자신과 가정을 건사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지만 마음을 둘 곳을 잃어버렸다. 몇 달 전에 생의 마지막까지 살아갈 집을 마련했다. 얼마 남지 않은 직장생활은 집 가까이에서 근무를 하며 일주일에 한 번이 아닌 자주 가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내가 준비한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오히려 집과는 터무니없이 먼 곳으로 자리배치를 받고 말았다. 편도 5시간을 운전해야 갈 수 있는 집이 간절히 그리워져버렸다. 아직은 일을 놓을 수 없다. 준비되지 않은 은퇴 후의 삶을 막연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다. 경제적 문제를 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심리적 안정감을 만들어낼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이방인으로 살기를 더 해야 함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집을 나설 때 이파리를 쓰다듬으며 충분히 물을 주었지만 몬스테라와 그라비올라 화분이 무사히 있을지 걱정이다. 이사를 다니면서도 항상 나와 함께 시간을 늙어가고 있는 반려식물이다. 옥녀봉에서 내려오는 햇살이 빗자루처럼 들이치는 창가에서 느릿느릿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주며 잎을 반짝이게 닦아주고 싶다. 그렇게 평온한 일상을 사는 동안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은 그 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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