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의미

새글 김경진 에세이시

by 새글

이사의 의미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면 20여 년 동안 터를 잡고 살아왔던 곳을 떠난다. 기억엔 별로 남아있지 않지만 좋은 일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성장시켰고 집의 평수를 넓혀갔고 직장에서는 승진을 했던 곳. 30대 후반부터 50대 중반까지 젊음과 나이듬의 시간을 보냈던 곳. 그러나 삶의 고달픔과 아픔과 상실이 더 깊어졌던 곳. 그렇다 해도 막상 영영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니 시원섭섭하다. 고된 삶을 살았던 시간만큼 정도 깊이 들었으리라. 근무하던 사무실 주변과 살았던 집 주위엔 내가 떠나더라도 그동안의 굴곡을 오르내렸던 삶의 세포들이 나 뒹굴고 있으리라.


집 인수를 위한 계약서를 쓰고 이삿짐센터의 견적을 받았다. 에어컨 철거 신청을 하고 나서 인터넷 이전 신청을 한다. 하나하나 메모를 해가며 이사를 위한 절차를 진행한다. 잔금을 받고 차에 오르면 다시 오지 않도록 빠짐없이 완벽한 이사를 하고 싶어서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으로 이사를 간다.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나로 변신을 할 것이다. 늦게 만났지만 늦은 만큼 절실한 사랑으로 다가온 사람과 혼자가 아닌 둘의 삶을 살기 위해 생의 마지막 이사를 간다. 그곳에서의 삶은 무조건 행복하고 싶다. 이제 남은 시간 전부를 살아야 하는 새로운 터전이다.


오래 쓰던 그릇과 수저와 컵들을 버린다. 낡은 냄비도 버리고 입지 않던 옷도 버린다. 구석구석 뒤져 끌어낼수록 잊고 살았던 과거들이 다닥다닥 붙어 나온다. 액자를 떼어낸다. 책장을 정리한다. 서랍장을 들춰내다 빛바랜 편지 뭉치를 꺼내 만지작이다 읽어보지는 못하겠다. 그대로 쓰레기 봉지에 담는다. 이사를 한다는 것은 삶의 한 시대를 털어내고 돌아보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버릴 수 있는 것은 버려야 한다. 버리고 싶지 않더라도 지나간 시간과 단절을 해야 한다면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이사를 하는 동안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를 한다는 것은 짐을 꾸리는 것보다 마음을 꾸리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