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글 김경진 에세이시
왜? 냐면
"선배는 글을 왜? 쓰고 있어요. 돈벌이도 안 되면서, 머리 아프고 시간만 많이 들어가는데."
"그러게. 돈벌이는커녕 오히려 돈과 시간을 들이는 글쓰기를 왜 할까?"
손가락으로 탁자 위를 튕기면서 빙그레 웃음으로 모호한 답을 해준다.
그냥, 할 일 없이 글을 쓴다고 할 수는 없다.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에는 하려는 의지와 목적이 개입되어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정신을 집중해야 하고 끊임없는 사색과 언어의 다듬음이 있어야 하는 글쓰기에 아무런 의도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간절하게 나를 지켜가고 싶다는 행위이다.
"너는 돈 벌어먹고사는 일 말고 하고 싶은 것은 없니?"
"요새 그런 생각일랑 하지도 못하고 살지요. 아이들은 어리고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삶에 다른 생각을 끼워줄 엄두가 나지 않아요."
한 두 해면 종식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나 코로나는 변이를 거듭하며 일상을 점령해 들어왔다.
사람들은 코로나에 생활의 많은 부분을 내어준 채 공존을 선택해보려 하지만 생명력을 강력하게 강화하는 코로나는 혼자 살아남아야겠다는 듯 공존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앞으로 일 년이든 이년이든 백신과 치료제가 코로나와 쉬지 않고 타협을 해낼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사람들은 두려운 시간을 버텨가고 있다.
삶이란 어려움에 처했다고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멈추지 않고 부딪쳐야 하고 좌절로부터 일어나야 한다.
나에게 글쓰기란 그런 것이다. 내가 살아가고자 원하는 방향을 보고 설 수 있는 지속성을 스스로에게 주입하는 일이다.
경제적인 득실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글을 쓰면서 나에게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들을 정화시켜 가고 삶을 대하는 자세를 가다듬는 것 자체가 나는 좋다.
"왜? 냐면 나에게 글쓰기란 좋아함이다. 나를 지켜감이다. 마음의 안식이다."
"선배에게는 글이 밥이고 일상인 것이네요."
이해하는 것인지, 이해하고 싶지 않다는 것인지 후배의 표정은 남의 나라에 일어난 가십거리를 대하는 것처럼 심드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