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포도를 씻어 들고 테이블 위에 늘여놓은 책들 쑥 밀어놓고 오래돼 푹 꺼지는 의자에 깊숙이 앉았습니다. 한 송이 한 송이 뜯어먹으며 TV 뉴스를 봅니다. 커다란 입들이 내뱉는 참말과 거짓말이 소용돌이를 칩니다. 조사를 하면 할수록 거짓말이 탄로 나는 것을 보면 본인들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결국에는 뉴스보다 포도송이에 집중하며 보고 있는데 천안함 6주기라고 합니다. 얼른 일어나 작고 동그란 플라스틱 아가 의자에 똑바로 앉았습니다. 금방 ‘충성!’ 하며 힘찬 소리를 들려줄 것 같은 청춘의 사진들. 푸른 바닷속 돌고래가 펄떡펄떡 튀어 오르는 듯이 어여쁜 그들이 하나하나 튀어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늙은 엄마가 "내 아들아" 부르며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비석을 쓰다듬는데 나 역시도 눈물이 주룩주룩 흐릅니다. 차가운 침묵의 비석, 얼마나 끌어안고 싶을까요. 우린 ‘벌써 6주기야?’ 하며 금방 잊고 말지만, 우리의 ‘벌써’ 속에 아들 잃은 엄마들 가슴에 피멍이 하나씩 하나씩 늘어났을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군인 아저씨께 위문편지 쓰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1년에 한 번? 두 번? 생각이 안 납니다. ‘군인 아저씨 덕분에 우리는 후방에서 편안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우리나라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될 수 있으면 큰 글씨로 적어 보냈었습니다. 더러는 답장을 받은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미어캣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아프리카의 건조한 황무지에서 무리 지어 서식하는 미어캣 공동체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하나를 위해(One for All, All for One)’라고 합니다. 천적인 매와 독수리를 경계하려고 서로 순번을 정해 나무 꼭대기나 바위에 올라가 주위를 살피고, 다른 식구들이 먹잇감을 찾는 동안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한 치의 소홀함 없이 공동체에 임할 위험을 살피고 경고합니다. 또한 암컷이 새끼를 낳으면 성숙한 암컷들의 유선이 함께 발달해 새끼를 공동으로 젖 먹여 키웁니다. 적이 공격해오면 굴 입구를 자기 몸으로 막아 동료들을 지켜내다가 죽기도 하고, 남은 식구들은 싸우다 죽어가는 동료를 홀로 두지 않고 옆에서 체온을 유지해주며 보살핍니다.
미어캣 공동체, 인간 사회 공동체,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의 공동체 철학 덕분에 지금까지 뿌리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더불어 살도록 창조되어 있기에 가슴이 멍든 자들과 무거운 마음을 나누며 함께 가야 합니다.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