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인사동 찌개 집에 옹기종기 모였습니다. 오늘은 졸업 40주년 축하 전시를 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웃고 또 웃었습니다. 아주 연로하신 선생님을 모시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후배 몇 명이 왔던가? 작품을 좋아하는 관객이 있었던가? 여하튼 오렌지주스, 견과류, 귤 등이 있는 작은 탁자 앞에서 덧없는 이야기하다가 화랑 문을 닫고 찌개 집으로 올 것입니다.
이럴 때 술이란 참 좋은 것입니다. 술잔을 하나씩 들고 "위하여!"를 했습니다. 술고래였던 친구가 손을 저으며 "요즘 속이 안 좋아서……"라고 말한 것을 시작으로 아픈 이야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졌습니다. 수술을 안 해본 사람이 없고, 짧든 길든 병원 신세를 안 진 사람이 없네요. 약봉지를 꺼내 보여주는 동창도 있었습니다. 한 잔 두 잔, 병의 하얀 물은 자꾸자꾸 없어집니다.
아아, 그 핏발 선 눈동자. 목에 선 강한 힘줄. 우리는 40여 년 전으로 돌아가 손짓 발짓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서 온몸으로 작품을 합니다. 젊었을 때의 그 기막힌 열정, 꿈, 가능성이 40여 년이란 명암의 세월, 그 오랜 좌절의 세월에 휩싸인 그들에게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릴 것, 한평생 매일 그릴 것, 죽을 때까지 다른 건 말고 그림만 생각할 것이라던 그들의 희망 그대로가 하나의 거대한 작품입니다. 열정과 꿈, 긴 세월이 엉켜 온몸이 만들어내는 동작은 명작 중 명작입니다.
복도를 마주 보며 조소실, 서양 화실이 있었습니다. 서양 화실에서 새어나오는 테레핀 냄새와 조각실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망치 소리 때문에 늘 서로 투덜거리며 지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열악하기 그지없던 작업실이었습니다.
‘모든 꿈은 이루어질 거야’라는 사라 브라이트만의 노래가 생각납니다. 부르고 싶군요. 화가는 파란 하늘을 지붕으로 그림을 맘껏 그리고, 조각가는 푸른 풀밭에서 흙을 붙여나갑니다.
구름이 흐르듯 명암을 만들어주고 새들이 노래를 불러줍니다. 에덴동산의 작가들은 기쁘고 즐겁습니다. 관객들도 즐겁습니다. 화가와 조각가 사이 풀밭에 귀엽게 앉은 아이는 손녀딸 단비가 세 살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