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책방을 아래위로 어슬렁댑니다. 이럴 때면 속으로 조용히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이내 흥분하고 시간이 흘렀다 싶으면 초조해집니다. 못 만나면 어쩌나. 안경을 벗었다 다시 썼다 하는데 황금색 표지에 깃털 모양이 간결하게 그려진 ≪공부하는 삶≫이란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두툼한 두께입니다.
‘고독은 활력을 불어넣지만 고립은 우리를 무기력하고 메마르게 만든다.’
‘지구의 격변 속에 심장이 고동치고 숨이 가쁜 세기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지금이야 말로 과거 어느 시대보다 사유가 인간을 기다리고 인간은 사유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위대한 사유는 심장에서 나온다.’
‘무한한 존재와 무한한 시간에 둘러싸인 공부는 참으로 영원성에 대한 공부가 된다.’
‘과식은 독이다. 살아 있는 도서관, 걸어 다니는 사전이라 불리는 것에 조심해라.’
‘뇌는 나에게 피신처가 되었다. 그러나 뇌보다 상위에 있는 것은 뇌가 헌신하는 대상이며 그것이 훨씬 더 안전한 피난처다.’
‘고통이라는 대가를 치른다 해도 창작은 기쁨이다. 그리고 창작의 근원인 관념을 숭배하는 것은 더 큰 기쁨이다.’
후딱후딱 페이지를 넘기며 본 구절입니다.
어느 책이든 겉장을 넘기면 면지가 있는 공간이 나옵니다. ‘삶이란 끝없는 공부라는 것! 너무 늦게 늦은 줄 알지만 자라나는 잎사귀같이 크게 자라고 싶다’라고 쓴 뒤에 날짜와 내 이름을 썼습니다. 책상 위 제일 좋은 자리에 놓고 보자 했지만 미루고 미뤄 그사이 미국을 두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손녀딸 단비에게 “할머니가 공부해야 할 책이니 예쁜 그림을 기념으로 그려줄래?” 하고 부탁했더니 꽃밭 위에 분홍색의 작은 꽃을 향하여 커다란 호랑나비가 날아오는 그림을 그린 다음 사랑의 풍선이 떠다니는 사인도 해주었습니다. 싸 들고 인천공항에 닿았습니다.
그리곤 이번에 갈 때 가서 봐야지 하며 가방에 다시 넣었습니다. 단비가 짐가방을 구경하다가 나오는 책을 보더니 “할머니 공부책이지? 다 안 읽었어? 할머니 공부 싫어? 나도 좀 그렇기는 해” 합니다.
“할머니 나 여기다 그림 또 그려도 돼?”
“그럼 고맙지. 단비 생각하며 이번에는 꼭 읽을게.”
빨간색 사인펜으로 ‘STUDY LIFE’를 대문자로 소문자로 빼곡히 쓰더니 알전구 하나를 크게 그립니다. 유난히 밝은 알전구. ≪공부하는 삶≫ 383페이지입니다. 1년이 365일, 하루에 한 페이지 좀 넘게 읽으면 내 공부는 끝이 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