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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Sep 18. 2017

바다, 그 섬에서

#81

하얀 거품이 된 물방울이 수없이 밀리며 퍼져나간다. 밤바다도 지중해도 하나님께서 궁창을 만드셨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는 모르나 하늘도 깜깜하고 바다도 깜깜하고 그저 하얀 거품만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어제가 로마, 오늘은 시실리섬으로 간다 했다. 커다란 배 11층 객실에 누워서 아침을 기다리고 있다. 아침식사는 15층에서 7시부터다. 국적 불명의 그 많은 음식들, 생전 처음 보는 얼굴들, 자기들만의 말로 왁자지껄 떠들던 사람들, 그 틈새로 접시를 들고 다니던 낯선 사람들은 지금쯤 다 자고 있을 것이다. 아침에 그 왕성한 식욕을 채우기 위해서.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지났다. 배에서는 물이 귀해 모두 물병을 들고 다닌다. 내 앞에도 서너 개의 페트병이 놓여 있다. 높이 20센티미터의 그 페트병은 유난히 허리가 잘록하다. 옛날 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의 허리처럼. 하나씩 꺼내들었으나 꽉 잠긴 하늘색 뚜껑이 요지부동이다. 아침이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느지막이 동이 떠오르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눈과 손을 의지해 청할 수밖에. 지중해 위에 둥둥 떠 있건만, 손에 잡히는 물은 마실 수 없다.



빨랫감 몇 개를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빨아 말릴 곳이 전혀 없다. 이곳의 집들은 세탁물이 길가 담벼락에 매달려 있다. 공중그네 타듯이 집집의 세탁물을 건너건너 속옷 구경까지 하게 된다. 빨강 주홍 노랑 초록 무지개색 옷들이 다채롭다. 섬이라 그런지 이 풍경도 재미있다. 남우세스럽거나 흉해 보이지 않는다.


서울을 떠난 지 한 달이 넘었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며칠째 바다 위에 떠 있다. 잠은 안 오고 목이 마르다. 목구멍이 간지럽고 자꾸 잠긴다. 물병 뚜껑 하나 내 맘 내 뜻대로 안 된다. 이 배 위에 나같이 불쌍한 사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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