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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Sep 06. 2017

이렇게 보아도, 저렇게 보아도
내 사랑

#80

네 살 된 손자 지안이는 좁아터진 빌딩 사이에 운 좋게 들어앉은 주택 같은 빌딩 2층에 있는 어린이집을 슬슬 다닌다. 철 따라 마당에 꽃도 피고 그네도 있고 미끄럼틀도 있는 그런 재미있는 공간이 아니라 그냥 넓은 마루방이다. 집에서 데리고 놀아주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어린이집도 하나의 사회니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고 해서 툭하면 빠졌다 나갔다 하며 다닌다. 주위에는 외국인학교, 중학교, 은행을 비롯해 상호도 읽기 힘든 상가들이 즐비하다.


초등학생 때인지 중학생 때인지 어쩌다 유치원을 한 번 가본 적이 있는데, 3층짜리 빨간 벽돌집 2층이었다.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꽃동산같이 담벼락에 넝쿨장미가 예쁘게 피었고, 그 아래는 꽃잎이 떨어져 소복소복 쌓여 있었다. 조용하고 깨끗했다. 모두 똑같은 옷을 입은 얼굴이 뽀얀 아이들이 거니는 복도에는 생전 처음 보는 외국 그림들이 걸렸고, 교실에는 커다랗고 반짝거리는 검은 피아노가 놓였다. 어색하게 내 얼굴을 슬쩍 비춰보았다. 낯선 풍경에 여기는 어떤 세상이지? 생각했었다.



어느 날 지안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어린이집에서 지안이를 찾아 돌아오는데, 교통난이 심한 그곳을 비집고 나오다가 길옆에 가만히 세워둔 봉고차를 드드득 긁었다. 차 주인이 튀어나오고 지안 엄마가 황급히 내리고 지안이도 따라 내렸다. 서둘러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고 차에 올랐다. 말없이 모든 것을 구경했던 지안이가 묻는다.


“엄마, 차가 가렵대? 그래서 엄마가 긁어줬어?”


전혀 예상치 못한 지안이의 물음에 웃음이 터졌다. 지안이는 누우면 등을 긁으라 하며 잠을 청한다. 가끔 지안이 데리고 잘 때 “할머니는 팔 아파서 더 못해…” 하지 말고, 살살 리듬 주어가며 잘 긁어주어야겠다. 요렇게 예쁘게 이야기하는 시간도 금방 지나가 버릴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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