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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Aug 28. 2017

1센티미터의 정원

#79 작은 풀꽃의 힘!

    

장독 서너 개를 놓을 수 있는 자그마한 장독대를 만들고 그 아래로 꽃밭을 만들었다. 부엌의 둥근 식탁에서 차 마시며 책 보며 밥 먹으며 내다볼 요량이었다. 흙을 구워 만든 독의 질감과 그 속에 들어 있는 된장, 고추장, 간장의 묵은 맛과 해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싱싱한 꽃들의 향연을 즐기고 싶었다. 어릴 때 어디서든 보았던 채송화, 쪽두리꽃, 분꽃, 맨드라미꽃, 봉숭아꽃 등을 심었다. 그러나 두 해도 못 가서 내 꿈은 꿈으로 끝났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에 흙탕물이 자꾸 부엌 문턱을 넘어 들어오는 것이었다. 식구들 불만에 어쩌지 못해 시멘트를 개어 덕지덕지 덮었다. 그리고 아쉬운 마음에 인조잔디를 깔았다. 그러고 나니 나도 편했다. 장독대에 갈 때마다 신발을 신지 않아도 되었다. ‘뭐 그런 거지. 부지런해야 꽃을 보며 살지. 이렇게 게으른 사람들하고는 뭐 별수 있겠어. 그래도 인조잔디 밟으며 장독대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려고’라고 생각했다.

내린 눈이 장독 위에 남아 있고 인조잔디 위에도 눈꽃이 희끗희끗 피어 아침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데 늘 푸른 인조잔디와 하얀 눈꽃 사이에 불쑥 솟아오른 것이 보였다. 뭘까? 다시 쳐다보아도 분명히 인조잔디보다 키가 조금 컸다. 책 보던 안경을 벗어놓고 일반 안경을 쓰고 다시 보았다. 바람에 살살 흔들린다. 유리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햇살과 함께 내 얼굴에 부딪친다.


풀이었다. 색깔도 선명한, 귀여운 새싹이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1센티미터가 될까 말까 한 시멘트 틈새에서 나온 것이었다. 참, 그 감격이라니! 어여쁨이라니!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자연의 힘에 머리뿐 아니라 아픈 무릎까지 꿇었다. 내 마당에서, 1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틈바구니에서 핀 꽃이다. 생명력이 마구마구 솟구쳤다. 그 생명력에 의지하여 나도 자연을 사랑하며 살고 팠다. 반짝이는 눈과 작은 풀꽃은 이 세상 어떤 것보다 아름답고 예뻤다. 앞으로 어떠한 일이 있다 해도 이 감격과 기쁨을 잊지 말고 용기 있게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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