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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Oct 02. 2017

메마른 뼈에 메마른 조화

#82

평소 좋아하시던 꽃, 나와 같이 보시던 그 꽃을

갓 피어난 싱싱한 것으로 골라 구겨질세라

하얀 종이에 조심조심 싸 들고 묘지로 간다.


무덤 앞에 놓인 꽃병을 깨끗이 닦고

가져간 꽃을 한 송이 꽂으며 이 얘기

두 송이 꽂으며 저 얘기

세 송이 꽂으며 이야기가 점점 길어진다.


향내 나는 이야기에 꽃들은 서로 얼굴을 맞대며

서서히 물속으로, 땅 속으로 스며든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깊이깊이 사랑으로 스며든다.

무덤가가 환해진다.


메마른 뼈에 메마른 조화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메마른 꽃은 힘이 하나도 없다.

벌도 나비도 놀러 오지를 않는다.

지루하다. 땅 속도 지루하다.


생명 없는 꽃을 보아야 하는 그 쓸쓸함.

뼈만 남은 몸에 바짝 마른 꽃을 본다.

다시 한 번 눈을 감아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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