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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Dec 14. 2017

아담의 화산 같은 몸

#89

골골이, 병든 병아리가 어릴 적 별명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좋아하는 운동이 하나도 없다. 더운 계절에 절정인 야구는 규칙을 모르니 답답하고, 농구도 마찬가지다. 온 세계가 들썩이는 축구는 공을 놓친 골키퍼의 마음이 안타까워서 못 보겠다.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올림픽 때도 나 홀로 시큰둥하다.

어느 날 TV 화면에 머리에 착 달라붙는 모자, 눈두덩에 꼭 끼운 물안경, 그리고 몸에 딱 맞는 수영복을 입은 남자들이 한 줄로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것을 보았다. 꽉 찬 긴장감에 보는 사람들마저 입이 마른다. 그들은 그 시간을 맨몸으로 맞닥뜨린다. 발밑에는 넘실대는 물뿐이다. 주심의 신호를 기다리는 그들의 눈빛은 볼 수가 없다. 오직 그들의 근육만이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꿈틀대는 듯하다. 각자의 발밑에는 태어난 곳, 하나뿐인 내 나라의 이름과 국기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곧이어 탕! 소리가 나자 전쟁터에서 온몸의 힘을 실어 수류탄을 던지듯 일제히 뛰어든다. 한 번씩 머리를 들어 숨을 가누고, 또 돌진에 돌진, 목적지를 손으로 한 번 치고 돌아서는 그 모습은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고 날아오르는 모습이다. 0점 몇 초 사이로 1등, 2등, 3등이 순식간에 정해진다. 1과 2와 3이라는 커다란 숫자에 서 있는 그들의 몸이라니….


대학 시절 조소 실기실에서 ‘이브’를 수없이 만들면서 부드러운 선, 아름다운 선에 얼마나 몰입했던가.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선의 극치가 여인의 선이라는 말을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여인의 목선, 어깨선, 유방선, 허리선, 엉덩이선, 예부터 수많은 화가가 빛의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이브의 곡선에 빠져들었다.

TV에서 1년에 서너 번 화산 관광지대를 보여준다. 구경 온 관광객들이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다.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나는 듯하더니 별안간 우렛소리가 나면서 화산이 터지는데 높게 넓게 퍼져나가는 노랑과 빨강의 불덩어리들. 그 파편의 움직임과 장엄함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그와 맞붙어 요란한 축제가 되었다.


1등, 2등, 3등. 단상에 서 있는 그들의 몸은 ‘아담’ 그 자체였다. 툭 치면 솟을 것 같은 붉은 불화산. 몸 구석구석에서 생명력이 꿈틀대며 넘쳐흐른다. 창조주의 솜씨. 불화산 같은 몸매의 아담. 비단 같은 이브의 곡선. 이 세상 어느 것보다도 아름다움의 극치는 아담의 몸, 그리고 이브다. 단상에 서 있는 사람들은 끝내 물안경을 벗지 않았다. 눈빛을 보고 싶었다. 매서운 ‘매’의 눈초리일까. 아니, 햇살을 닮은 따뜻한 눈빛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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