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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Dec 29. 2017

놓쳐버린 미소

#90

소리 높여 박장대소할 일이 점점 줄어든다. 감격이라는 마음에 발동이 안 걸린다. 나에게서 슬며시 사라져가는 기분이다. 호호호 하하하는 그냥 즐거운 것, 하지만 미소는 저 속에서 나와, 아침햇살에 빛나듯 얼굴 전체가 환해지는 것. 미소에는 무게가 느껴진다.


TV에서 방영했던 외국 드라마 중에 내가 즐겨 봤던 건 <형사 콜롬보>, <월튼네 사람들>, <미녀 삼총사>다. 온 가족이 한 지붕 아래서, 혹은 이웃과 같이 어려운 일을 해결해가며 사는 이야기들이다. 다 생각이 안 나고 딱 한 장면, 넓은 벌판에 오뚝이 서 있는 오두막. 창문에 햇살이 가득하다. 몇몇 부엌 가구가 보이고, 작은 침대에 엄마가 아파 누워 있다. 젖먹이 아가도 같이. 침대 가에는 서너 살짜리 아이 두 명과 열서너 살짜리 아이가 한 명 더 있다. 엄마는 큰아이를 불러 갓난아이를 팔로 안아 건네주면서 떠듬떠듬 잘 기르라고 이야기한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지켜주신다. 엄마는 하늘나라로 간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엄마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흐른다. 작은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보다 더 밝게 미소를 짓는다. “넌 할 수 있다. 동생을 잘 키울 수 있어.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 걱정 마라.” 얼떨결에 아기를 받은 아들은 “엄마, 걱정 마세요”라고 한다.


저 벌판에서 우유는 어디서 구하며, 암죽은 어떻게 끓일까? 아기가 별안간 열이 나고 배탈이 나고 아프다면 어쩌지? 나는 그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되지 않는 감정은 미움이 되었다. 어찌 어린 삼남매를 미성년 아들에게 맡기면서 저리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할아버지, 할머니가 커다란 마차에 먹을 것 입을 것 가득 실고 유모와 하녀를 데리고 온다고 해도 그 미소는 아니다. 어린것들과 헤어진다. 하나님이 그리 좋을까? 그래도 그렇지. 찬송가 중에 ‘너 근심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가 딱 이 상황 아닐까? 엄마의 미소를 납득하지 못한 채 강산이 서너 번 바뀐 지금, 그 엄마의 마음을 희미하게나마 알 것 같다(?). 인생의 깊은 겨울이 오기까지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지켜주셨는지를, 심지어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죄인인 나도 이 세상을 떠날 때 ‘잘들 지내세요’ 하며 그 엄마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는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미카엘 천사가 삶을 경험하며 신이 벌로 내린 질문에 답을 찾아간다. 그리고 가난한 구두수선공 시몬의 집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 하늘을 쳐다보며 미소 짓는다. 주님께서 내게 무엇을 주시면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평생의 숙제였는데 70여 년을 살고 보니 내가 문제였다. 언제 어디서든 무엇이든 나밖에 일할 사람이 없었다. 앞뒤 양옆 보지 않고 오로지 나뿐이었다. 그리하여 온 짐을 머리부터 허리까지, 아니 저 발끝까지 지고 있었다. 아무리 주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다 한들, 환한 미소는 너무나 멀리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다. 내가 모든 짐 지고 살았기 때문에 노년에 미소는커녕 웃음도 안 나온다. 헛기침만 나온다.


6.25전쟁 때 미군이 지나다가 어떤 노인이 머리에 짐을 잔뜩 이고 걸어가는 것이 안되어 트럭을 세우고 태웠다. 그런데 노인네는 트럭에서도 머리에 올려놓은 짐을 내려놓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딱 그 꼴이다. 일찍 내려놓았으면 내 미소 남이 볼 수 있었고 상대방의 그 환한 미소 보았을 텐데, 인생 탓만 하며 파랗고 깨끗한 하늘이 검고 더럽다 하며 지냈다. 가끔 죽음을 생각하며 눈물지었지만 요즘은 거의 매일이다시피 죽음을 생각한다. 올 초봄부터 시작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까지 초상을 다섯 번을 치렀다. 오늘은 대학동창, 한동네 살면서 건강도 돌보지 않고 열심히 그림만 그린 동무가 어젯밤 번개가 요란한 가운데 폭우 따라 세상을 떠났다. 오직 그리고 또 그리고 그리다가 떠났다. 식장에는 맨 마지막 그림이 이젤에 얹어 있고, 흰 국화들이 나란히 놓인 단상 위쪽에서 친구가 살며시 미소 지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다. “너 어찌 갔니? 아이들 두고. 애태우던 그림 두고, 죽어라 그린 그림 고스란히 두고.” 흰 국화 한 송이 들고 어찌할지 떨고 있다가 간신히 놓았다. 슬픔이 북받쳐 눈물을 마구 흘렸다. 밖은 비가 여전히 주룩주룩 내린다. 장례식장은 만원이다. 지게 등에 얹힌 흰 국화들은 여전히 방의 호수를 찾으며 층계를 오르고 내린다. 친구의 아들, 딸의 손을 붙잡고 “엄마가 평소에 하듯 씩씩하게 떠났구나. 씩씩하게”라고 했더니 딸과 아들이 눈은 울고 입은 애써 웃으며 “씩씩하게 가셨어요”라고 한다. 빗속에 건너다보이는 병원 응급실은 사람이 가득하다.


그래! 언젠가는 나도 가야지! 얼마 안 남았다. 그런데 내 아이들을 어떻게 떼어놓고 가지? 막내가 1973년생이다. 그 위로 3년차로 딸이 둘이 있다. 아이들이 이제 40대인데. 후후후. 앞에 4자를 빼도 미소 지으며 갈 수 있는 의젓한 내가 되고 싶다. 그 미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누군가의 사랑으로 산다. 내가 내 문제로 생각하며 사는 것이 아니다. 삶에서 사랑만이 모든 것을 완성시킬 수 있다. 70여 년을 놓친 수많은 미소 덕분으로 여기까지 살아왔다. 내 옆에 있는 미소를 못 보고 먼 곳을 보며 울며불며 고달프다 했던가. 사랑만이 생활의 근본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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