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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Dec 07. 2017

이름 없는 개

#88

옛날 구파발로 가는 길은 좁고 길고 아주 복잡했다. 방향표시도 없는 그곳을 분위기로 짐작하며 골목길로 들어서면 자동차 높이보다 낮은 대문들이 보였다. 살금살금 골목을 빠져나오면 개천을 가로지르는 왜소하기 하기 짝이 없는 외다리가 나오는데 푹 꺼질 것만 같아 항상 두근거렸다. 그다음으로 나오는 건 이 동네 유일한 구멍가게. 이곳의 식품 유효기간은 사치다. 여기서부터 폴리 공장의 마당이 시작됐다. 그 놀라운 작품을 하던 작가들이 드나들던 장소다. 쓸 만한 쪼가리들이 없나 하고 빙 도는데, 잡동사니가 잔뜩 쌓인 곳에서 뭐가 움직이는 것 같아 기겁을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살펴보니 굵은 줄에 묶인 개였다. 검정개는 눈도 까맸다.


얼마 뒤 폴리 공장은 그곳에서 30여 분을 더 들어간 벽제 시립묘지 앞으로 이사를 했다. 구파발이 재개발 바람을 맞은 것이다. 이사한 곳은 첫째가 조용했다. 둘째가 깨끗했다. 셋째가 나무들이 많았다. 봄에는 산에 산에 꽃이 피고, 지칠 줄 모르고 지저대는 새들, 나지막한 곡선의 무덤 등 시선을 가리는 것이 없고 온종일 햇볕이 강하다. 뒤꼍에 있었던 이름 없는 검정개는 자그마한 판자 조각으로 된 자기 집에 묶여 정문 오르막 입구로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임무인 양 짖어댄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나에게는 무심하다. 답답한 내가 “너, 나 알고 있니?” 하면서 까만 얼굴의 까만 눈동자를 찾아 쳐다보아도 묵묵부답이다.

검정개는 제일 추운 1월이 되면 꼭 새끼를 낳았다. 많게는 7마리씩도. 그 작은 개집 안에서 새끼들끼리 밀치는 바람에 매번 2~3마리는 밖으로 떨어져 깽, 깽, 깽 울어댔다. 악착같은 놈은 다시 올라가고 그렇지 못한 놈은 애달프게 울었다. 공장에서 누군가가 추위를 무릅쓰고 뛰어나가 만원 지하철 속 같은 그곳으로 비집고 넣어줘야 했다.


내가 작업실을 근방으로 옮긴 지도 6년이 가까우니 모두 몇 마리나 될까? 몹시 추운 어느 날 안쓰러운 마음에 곰탕, 설렁탕, 갈비탕 등을 사다가 어미개의 몸보신을 시켜준 적도 있었다. 새끼들은 봄이 오면 제법 커진다. 흰둥이, 누렁이, 검둥이, 때로는 흰색+검은색이 섞인 개. 고만고만한 것들이 통통하게 살쪄서 이리저리 다닌다 싶으면 어느 틈에 하나둘씩 눈에 보이지 않았다. 강아지 어디 갔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면 폴리 공장 윤사장은 “가게 하는 곳에서 달라고 해서요”라고 한다. 그러면 쇠줄에 묶여 있는 까만 어미에게 시선이 옮아갔다. 나와 눈이 마주쳐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언젠가는 딱 한 마리가 남았다.

“이름 지었어요?”, “이름이요? 없어요.”

없어요 강아지는 쪼르르 어미개 옆으로 바싹 다가앉는다. 검정개는 무표정하다. 새끼들이 달려들어 젓을 빨면 먼 곳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던 그 얼굴이다. 그러고 보니 어미개는 구파발에서 날 처음 봤을 때를 빼놓고는 한 번도 짖은 적이 없다. 어미개는 그렇다 치더라도 새끼들도 날 보고 짖지를 않는다.


어느 새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밤나무에 밤이 다닥다닥 매달렸다. 기다란 장대를 만들어 물 한 번 준 적 없이 추수를 한다. 이곳은 서울 시내보다 온도가 몇 도씩은 낮아서 바람도 몹시 차다. 다시 정월이 온 것인가. 추위와 눈 때문에 가다 말다 하다 가보면 어미와 새끼의 배에 젖줄이 불그레하고 배가 불룩하다. 어미와 새끼가 새끼를 가진 것이다. 공장 직원들이 밤이면 동네에 개 몇 마리가 돌아다닌다고 한다. 저기 무덤 근처 진달래꽃 근처 저 개 같다고. 궁금하던 차, 목을 빼고 쳐다보니 비쩍 마른 허연 개였다. 윤사장에게 “개 주인에게 이야기 좀 해봐요. 이름 없는 검정개는 정월이면 새끼를 낳고, 윤사장은 사료비를 대고, 새끼들이 자라면 여기저기 주려고 애쓰고… 개를 불임수술을 시키든지. 추운 겨울 국방색 천막 하나 덮은 데서 강아지 우는 소리 더 듣기 힘드네”라고 해도 씩- 웃으며 “다 그렇게 자라는 것이에요”라고 한다. 평생을 줄에 묶여 이름도 없이 정월달이면 새끼들을 낳고 이름 없는 새끼들은 또 엄마 곁을 떠난다. 우린 서로 이름을 모른다. 그러나 난 그 개를 알아보고 새끼들을 알아보고, 검정개와 새끼들은 나를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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