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가본 길, 갈 수 있을까?

# 15

by 김경옥

계절을 다시 맞이하듯이 보았던 책도 영화도 다시 보게 됩니다. 그러면 더욱 좋아집니다. 서성거리다 밀레의 명화집 ≪달빛 아래 농가의 뜰≫을 또 봅니다. 하늘도 하얀 달빛도 고요합니다. 낮에 열심히 일하던 농기구들도 조용합니다. 옛날 우리나라에도 있던 싸리문이 힘없이 그냥 서 있습니다.


그 그림을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마음이 시렸습니다. 다음에 볼 때는 하얀 달님과 싸리문이 내 마음을 깊은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이제 보니 강아지가 있군요. 홀로 무언가를 기다리는 강아지는 자유롭습니다. 싸리문에 쑥 머리를 내밀고 안 가본 길도 갈 수 있습니다.



새벽 3시가 지나갑니다.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어봅니다. 하얀 달님도 싸리문도 없습니다. 불 꺼진 아파트 창문만 보입니다. 아! 가로등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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