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책

# 19 부조

by 김경옥


서두르지 않는 사람들 틈에 끼어 앉아 파도를 봅니다. 조바심이 천천히 가라앉습니다. 봄볕에 빨아 널어놓은 아가 옷처럼 잔잔하게 흔들거립니다. 미리 누리는 기쁨입니다. 파도의 움직임 속에서 춤의 동작을 생각합니다. 나뭇가지 잎사귀와 잎사귀, 그 틈새의 햇빛을 보고 시를 지었습니다. 천둥과 바람소리에 ‘음’을 알았습니다.


노을을 기다리며 봅니다. 깊고도 오묘한 빛의 선물, 오늘을 떠나는 기념으로 남긴 찬란한 빛의 선물입니다. 하늘과 바다는 시시각각으로 이 빛이 저 빛으로 합쳐지다가 어느 순간 지평선 너머로 사라집니다. 그 위로 갈매기가 힘차게 비행을 합니다.


어느 순간 노을이 책으로 변했습니다. 바다에 펼쳐진 노을빛만큼의 책이 흘러내려옵니다. 아가가 걷듯이 천천히 다가옵니다. 일평생 변치 않고 내 곁에 있어준 친구들입니다. 뭔가 깨달았으면 이 오묘한 신바람을 감탄하며 감격하며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온 노을이, 깊고도 오묘한 빛깔이 하나하나의 책으로 보였습니다. 그 위대한 작가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를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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