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곡예

# 18

by 김경옥

하늘의 모형을 딴 높은 천장에서 오색의 물이 쏟아집니다. 단원들이 공중에서 유연하면서도 힘차게 다이빙을 합니다. 거센 물소리와 음악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천둥번개 치듯 요란합니다. 화려한 조명을 받은 물은 폭풍에 몰리는 커다란 빨랫감같이 철썩철썩 숨이 찹니다. 소도구들이 원형의 무대를 혼란스럽게 하며 집채만 한 꽃들이 피었다 지었다 합니다.


원형 경기장 같은 무대가 객석이기도 한 독특한 설계의 극장, 사방에서 쇼맨, 쇼걸들이 나옵니다. 관객들 바로 옆에 서서 자기가 출연할 숫자를 집중해서 세고 있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되겠죠. 오직 집중하고 서 있는 그들의 발을 보았습니다. 물속의 곡예니 물론 맨발입니다. 벌겋게 부르터 보입니다. 손뼉을 치며 환성을 지르는 객석을 생각하며 손발을 얼마나 혹사시켰겠습니까.


우리 모두의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그들의 삶.



인생이 곡예인 줄을 알기에 첨단 장비를 어마어마하게 진열해놓고 쇼를 해도 허전하고 슬프긴 매한가지입니다. 최신 장비는커녕 낡은 천막 쳐놓고, 가는 줄 위로 굴렁쇠도 굴리고,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 시커먼 줄을 붙잡고 그네를 바꾸어 탔던 옛날 유랑극단. 객석은 외로운 알전등 아래, 바닥은 모래 위에 거적때기가 놓여 있었죠. 물쇼가 끝난 뒤에 스텝들이 나와서 그 옛날처럼 고개 숙여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손을 흔들며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썰물같이 밀려나갔습니다. 미련 없이 빨리빨리 나가는 사람들 틈을 따라 나가다가 무엇을 잃어버린 것같이 다시 극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조명이 꺼진 헐벗은 삭막한 무대, 생명을 지켜주었던 늘어진 가련한 선들, 조명발 없는 푸석푸석한 종이꽃들, 공중에 매달려 어쩔 줄 모르는 불안한 의자들. 물거품 없어지니 그저 색 없는 물뿐이었습니다. 조명, 그 빛이 없어지니 그들이 온 힘을 다해 붙잡았던 그 무수한 줄과 천사들만 탈 것 같았던 의자들은 무심히 공중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치솟는 물속을 헤매며 곡예를 할 것입니다. 그 이름도 화려한 라스베이거스에서 몽환적인 샤갈의 곡예 같은 그림과 피카소가 ‘장밋빛 시대’에서 등장시켰던 곡예사 가족, 그리고 아폴리네르의 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길 떠나는 어릿광대들,

밭둑을 따라

저 먼 들판으로 사라져간다.

성당도 없는

작은 마을 빛바랜 여인숙 문 앞을 지나

아이들은 앞서가고 생각에 잠긴 어른들,

그 뒤를 따르는데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군 과일나무들이

멀리서 이들에게 손짓을 한다.

울룩불룩한 짐 모퉁이에

북과 반짝이는 금빛 굴렁쇠 곰과 원숭이처럼

순한 짐승들,

길에서 한 푼씩 돈을 모은다.'



피카소도 유랑극단을 볼 때는 손에 땀을 쥐고 환호하며 보았겠죠. 그러나 화실에서 그 장면을 그릴 때는 그의 붓은 아프고 슬프고 외로웠던 것입니다. 마술 같은 화려한 불빛 속의 쇼 같은 인생, 그림에 그네들의 슬픔과 애틋한 마음이 보이겠죠.


도박장 이야기를 안 했군요. 이번만은 ‘혹시나’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죠. 혹시나 씨들께서 푼푼이 낸 돈들이 운 좋은 엉뚱한 혹시나 씨에게 한꺼번에 갑니다. 기가 막힌 나눔의 전시장이 아닙니까. 찰나적으로 행운이 오고 그리고 갑니다. 그들은 밤새워 손으로 수없이 곡예를 합니다. 수많은 돈이 아찔하고 아찔한 곡예를 합니다. 토르륵 아니면 쫘르륵 하는 기계 속의 동그라미는 숫자에 혹사당하고 사이좋게 모여 앉은 곡예사들은 납작하고 동그란 것이 동글동글 굴러가고 넘어가는 곡예에 마술을 겁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안내방송이 흐릅니다.

“기류 관계로 비행기가 흔들리니 자리에 앉아 벨트를 꼭 매십시오.”

붉은 등이 들어옵니다. 먹구름과 폭풍 속에서 비행기가 힘겹게 곡예를 합니다. 나도 곡예사입니다.

거대한 지구를 무대 삼아 우리도 곡예를 합니다. 한 고개 한 고개 아슬아슬 넘어갑니다. 쓰러질 듯 아슬아슬한 촛불 칠십 개가 가득하군요. 변형된 쭈글쭈글해진 손가락과 돌처럼 딱딱한 발바닥을 눌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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