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같은 돌덩어리

#2 봄, 봄

by 김경옥

오늘 날씨는 봄봄 같네요. 덕평리를 지나면 자주 가는 돌공장이 있습니다. 봄이면 색색의 꽃들이 화려하게 핍니다. 자그마한 연못의 잉어도 볼만합니다. 채석장을 방불케 하는 그곳에는 여러 가지 돌들이 있습니다.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운 다양한 빛깔의 이탈리아 대리석, 중국 대리석, 우리나라의 논산석, 마천석, 오석 등이 여러 형태로 조각나 되는대로 널려 있고 쌓여 있습니다. 그 자체가 작품들로 보입니다. 어두워져서 스탠드를 켜면 책상 위에 책, 연필, 지우개, 볼펜 그리고 안경이, 찻잔이 아무렇게 놓인 모습이 근사해 보이는 바로 그 상태입니다. 무의식적인 상태, 아무런 의도함 없이 그냥 놓인 것, 좋은 작품이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요. 버려진 돌 사이로 ‘설치미술이 따로 없네’ 하면서 야산 쪽으로 슬슬 올라갔습니다. 그때 이름 모를 봄꽃이 핀 듯 오롯이 혼자 있는 돌덩이를 발견했습니다. 참 묘하게 잘려 있었습니다. 본체는 잘려나가고 의미 없이 버려진 돌에 마음이 끌려 꺼내들고 내려와 얼음같이 차가운 지하수로 닦아냈습니다. 머나먼 이탈리아의 어느 채석장에서 뽑혀서 여기까지 실려와 한 부분은 데려가고 뚝 잘린 채 버려졌겠지요. 작업실로 데려와 흙투성이인 책상을 말끔히 닦아내고 마천석으로 만든 광나는 좌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낡은 책이 생각납니다. 김유정≪봄봄≫입니다.

딸아이 점순이의 키가 크면 성례를 시켜준다는 조건하에 머슴으로 들어온 순진무구한 농촌 총각은 점순이의 키가 자라지 않아 노심초사합니다. 무거운 물동이를 자꾸 이니까 뼈다귀가 움츠러드는 거 아닌가 하여 물을 대신 길어주며 성례를 올릴 날만 눈 빠지게 기다린다는 내용을 산촌의 토속적 말씨로 재미있게 그려 입가에 웃음이 감돌게 하는 작품입니다. 동네 서낭당에 가서 점순이의 키 좀 크게 해달라고 비는 순박하고 우직한 총각이 참 안됐다 하며 읽었고 언젠가는 결혼시키겠지 안심하면서 책장을 덮었습니다.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듯 무럭무럭 자란 점순이가 머리 위로 봄과일을 가득 이고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쓸모없던 돌덩이는 자라는 나무가 되어 성례할 날만 기다리던 총각은 기쁨에 입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들에게 찬란한 봄날이 왔습니다.

하얀 대리석에 무슨 색칠이냐며 주위에서 말렸지만 뭐 어떠랴, 애타던 봄, 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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