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해야 할 때 하기 싫었던 공부, 몽상과 망상에 취했었습니다. 시험이 내일이다 하면 포천이나 의정부 쪽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와 어렵게 산 커피를 국사발에 타서 마시고 앉은뱅이책상에 근엄하게 앉아 책을 폅니다. 연필로 무언가를 쓰면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곧 아무 기억이 없습니다. 그냥 책에 머리를 얌전히 대고 조용히 잤습니다. 잠을 실컷 자는 것만이 소원이고 소망이었습니다.
아이들을 키울 때 쏟아지던 잠. 젖을 먹일 때나 우유를 먹일 때 어쩌다 아이를 끌어안고 슬며시 낮잠이 들면 아이는 어느새 먼저 깨어 칭얼대며 내 배 위를 기어오릅니다.
‘잠 좀 실컷 자보았으면-.’
이제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참견하지 않습니다. 풍족한 자유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쏟아지던 잠은 깜깜한 과거에 묻히고, 오늘도 난 스스로를 달래며 하라는 대로 할 테니 제발 잠들라 합니다.
그때 그 잠이 부럽고 그리워서 만든 작품입니다. 아침햇살처럼 환했던 그 시절, 항상 그 햇살일 거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 늙음이 어둠이란 생각도 못하고 오직 아기가 잘 먹고 트림 잘하고 잘 싸고 뒤집고 앞으로 기어가고 간신히 일어나 앉아 짝짜꿍하고 비틀비틀 뒤뚱뒤뚱 손잡고 걷고….
이것에 모든 것을 쏟았습니다. 이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라디오에서 러시아 음악이 흐릅니다. 그리움과 기다림에 한해서 러시아 음악에 비할 게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