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내 친구 내 짝꿍
우리 집 거실 TV 옆에는 딸아이가 그린 <반 고흐의 의자>가 있습니다. 보고 그대로 그려줘 반 고흐의 작품입니다.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늘 이 작품을 쳐다봅니다. 고흐가 의자를 그릴 당시의 그 지독한 가난과 고통은 쏙 빼버리고 나에게 그 불꽃 같은 열정만 줄 수는 없을까. 책에서 만났던 위대한 작가들을 모두 번갈아 의자에 앉혀놓고 그들이 겪었던 괴롭고 아픈 고통은 빼놓고, 오직 그 열정 그 영감만 받고 싶어 집니다.
내 작품에는 의자가 많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어디가 달라서 내 의자는 이토록 초라해 보일까요. 눈으로 보이는 의자 작품도 있고, 머릿속으로 가슴속으로 보이는 의자 작품도 있습니다. 꼭 사람만 앉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구름도 잠깐 머물고 아침에는 해님도 앉고 겨울에는 함박눈이 소복이 앉습니다. 새들이 힘차게 나뭇가지와 의자를 번갈아 오르내리며 재미있게 지저귑니다. 산들바람도 놀러 오고 폭풍은 앉자마자 후딱 떠납니다. 이슬비는 솔솔 오래 앉았다 가고 여름의 장마는 의자를 말끔히 목욕시켜줍니다.
자연은 의자와 주고받습니다. 의자의 꿈은 넓고도 깊고도 큽니다. 침묵하는 의자, 마치 바닷속같이 그 속을 모르는 의자지만 한 가지 내가 아는 것은 그 품이 넓고도 커서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사람, 큰 사람, 훌륭한 사람, 나쁜 사람, 슬픈 사람, 기쁜 사람,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 절망에 힘겨워하는 사람에게 의자는 싫다고 찡그리는 법이 없습니다. 다 앉게 합니다. 동시에 마음의 모든 짐을 편하게 쉬게 해줍니다.
조각을 하는 사람으로서 청동에 생명을 불어넣은 로댕의 이야기를 담은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영화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어느 것 하나 생명력이 넘치지 않는 작품이 없었습니다. 나도 인체를 무수히 만들었습니다. 앞에서 보고 뒤에서 보고 또 아래서 위를 쳐다보며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그리고 옆에서 쳐다보며 빙- 돌고 또 돌면서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같은 인체를 보고 만들었는데 무엇이 다르게 보여서 로댕의 인체는 생명력이 넘쳐나고, 나의 인체는 생명력을 잃어가는 것일까요.
모두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의자도 인체도….
하지만 그들에게는 같은 것을 다르게 만드는 힘, 태양처럼 뜨거운 열정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