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우체국 가는길
매일 보는 골목길을 지나면 문방구, 자전거포, 길 건너 눈에 익은 할아버지 치킨 집, 병원, 설렁탕 집 옆 우체국이 있습니다. 뭇 사연이 쌓이는 추억의 건물입니다. 우체국 가는 길과 이메일 보내는 시간을 비교해보면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북이와 토끼처럼 거북이 편지는 회오리바람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마음을 가만히 가라앉혀주어 내가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게 해줍니다. 마음과 마음이 오고 가는 것은 종이에 내가 내 글씨로 마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연필, 지우개, 볼펜, 종이, 옛날 같으면 잉크병, 펜촉, 이 모든 것의 모양새에서 그 시대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종이에 편지를 쓰고, 종이로 된 책에 연필로 줄을 그어가며 책장을 넘기는 걸 좋아합니다. 기분 나쁜 편지는 구겨서 확 버립니다. 그러면 잠시나마 분노가 가라앉습니다. 소중한 편지는 노랑 테두리에 모란꽃이 만발한 직사각형 상자 속에 넣습니다. 상자만 보아도 가슴에 켜켜이 쌓아둔 추억이 떠오릅니다. 마음의 꽃이 다시 피어납니다.
영화 <1492 콜럼버스>에서 콜럼버스는 밤이면 촛불 아래 공작새 깃털처럼 멋스러운 깃이 달린 펜에 잉크를 묻혀 일기를 씁니다. 종이 위에서 왈츠를 추듯이 구불구불한 필기체가 그림같이 멋있게 보일 때마다 종이에 펜이 닿는 그 소리가 참 경쾌하게 들렸습니다. 이제는 컴퓨터에 밀려 영원히 없어진 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