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명

# 30 기차에 쓰는 편지

by 김경옥

늦은 예배를 갔습니다. 교회는 아침예배 때와는 달리 적당히 꽉 차 답답하지(?) 않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목사님 첫 말씀이 “아이들을 기르면서 잠시라도 잃어버린 경험들이 있지요?”였습니다. 애가 타고 정신이 혼몽한 상태, 죽음과 같은 숨막힘을 여러 가지 예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막내를 남산공원에서 한 번 잃어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그렇게 느리게 가는 시간을 경험한 적은 없습니다.


좋아하는 배우 니콜 키드먼이 나오는 영화 <레빗 홀>에서 젊은 부부가 네 살 된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습니다. 집 앞에서 개는 다람쥐를 쫓아가고, 아들 데니스는 개를 쫓아가다가 그만 사고가 난 것입니다. 데니스 또래 아이들이 있는 친구들과는 교제가 단절되고, 부부는 아이를 잃은 사람들 모임에 나가 치유를 받으려고 노력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남편은 휴대폰으로 찍은 아이의 동영상을 매일 들여다봅니다.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개는 친정집에 보내고 장난감을 상자에 넣어 지하실에 내려 보내고 집을 내놓아도 소용없습니다. 아들을 먼저 저 세상에 보낸 친정 엄마가 견딜 만한(?) 세월이 가니 커다란 바위였던 것이 작은 돌멩이가 되어 주머니에 꼬옥 넣고 살게 되더라고, 그래서 죽음에까지 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중학교 때 무릎에 물이 차는 병이 생겨 자리에 누웠던 적이 있습니다. 창호지 문을 열면 툇마루가 있는데 동네 아주머니가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어린 딸을 잃어버린 이야기를 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밥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어 대한민국 방방곡곡 고아원은 다 가보았다 합니다. 서너 달에 걸려 한 바퀴를 돌고 오면 혹시나 그동안 들어와 있지 않나 또 돌고 오고, 그렇게 팔 년의 세월이 지났다 합니다. 우리 엄마는 엄마의 마음으로 듣고 같이 한숨 쉬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위로를 합니다. 천장을 보고 누운 나는 그 빛바랜 무늬가 어느 소녀의 얼굴로 보입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었을까. 내 눈엔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그 어린것, 누군가 도와주어 살았다면 할머니가 되었겠군요. 학교 갔다 오는 길에 가끔 집 앞에서 예의 그 툇마루에서 우시는 아주머니와 마주쳤습니다. 그분이 왔다가는 날에는 우리 집 둥근 밥상에서 항상 그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우리의 가난한 밥상은 멀리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영화 <레빗 홀>로 돌아가서 엄마는 아들을 차로 친 고등학생을 만나서 대화를 하며 치유를 받기 시작합니다. 그 학생은 ‘레빗 홀’이란 만화를 그립니다. 부부는 결심을 합니다. 개를 데리고 오고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기로 합니다. 사고 후 만나지 않던 친구들, 식구들을 모두 초청해 서로 안부를 물으며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데니스 이야기를 꺼내면 그냥 지낼 만하다고 그들을 안심(?)시킵니다. 부부는 평생 보고 싶지 않은 사고를 낸 학생을 용서함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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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상한 날입니다. 제일 기피하는 이야기를 두 번씩 듣고 보게 되었습니다.

TV에서 아이를 어떻게 했다 하면 귀를 막고 채널을 서둘러 돌리는 것, 좀 유별나지만 어쩌다 보게 되면 그 마음이 너무도 오래 갑니다. 듣기만 해도 이리 힘드니 당사자들은 오죽하겠어요. 다 컸어도 아이는 아이겠죠. 오늘도 무사히, 그저 건강하게 무사하게만 해주세요.


여름방학 때인 것 같습니다. 엄마 심부름으로 청참외를 들고 들어오는데 참으로 오랜만에 그 아주머니가 툇마루에 앉아 있었습니다. 웃음기 없는 얼굴, 생기 없는 눈빛, 입술에 립스틱도 없습니다. 엄마가 “얘, 아주머니 아이 찾았단다” 하십니다. 놀란 나는 더 이상 말이 안 나와 부엌으로 들어가 흥분에 덜덜 떨며 참외를 깎았습니다. 아주머니는 분홍색 립스틱을 항상 발랐었습니다. 엄마 말로는 아이를 별안간에 만날 때 그때 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랍니다. 그때 아주머니는 쫓기듯 나무대문을 무겁게 밀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사 후 지금까지 소식을 모릅니다. 혹시 몇십 년 전 그 아주머니가 주위 사람들에게 찾았다 안심시키고 세상에서 사라진 것 아닐지, 며칠간 또 가슴앓이를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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