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싱어를 생각하며
지금 내 가슴은 몹시 아픕니다. 주인공 싱어가 내 가슴을 자꾸 파고듭니다. 아무리 머리를 흔들어도 막무가내입니다. 얼마나 무섭고 외롭고 답답하고 사람들의 무심함에 절망했을까. 불쌍한 마음에 거실 마루를 왔다 갔다 수없이 하다가 늦은 시간이지만 펜을 들었습니다. 마음은 아프지만 글을 쓰는구나, 바로 이 맛에 책을 읽고 작가는 이것을 노리고 글을 쓰는구나.
원작자 카슨 매컬러스가 쓴 이 작품은 1940년에 출판되었고, 당시 작가의 나이가 스물세 살이었다고 합니다. 그 나이에 이런 절대 고독의 글을 쓰다니….
내 나이 스물세 살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철없이 미술대학 조소과에 다니던 시절입니다. 고민하지 않고 허영에 들떠 작품을 했고, 그 죄를 지금 톡톡하게 받고 있습니다. 수박 겉핥기, 겉만 보고 푸른 녹색의 검은 줄이 그어진 것은 수박이야, 수박에 그어진 검은 줄이 몇 개인 줄 알아? 외치던 때였습니다. 왜 수박의 열꽃 같은 붉은 열정을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요? 요즈음 내 쪼그라진 가슴은 매일 주름 투성인 내 주먹으로 얻어맞는답니다. 헛-소-동으로 내 청춘은 갔습니다.
작품, 너는 무엇이냐. 안타까움에 온몸이 가렵고 뒤틀립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지지부지 끝나는 것일까. 어디까지가 작품이고 어디까지가 예술이라는 것일까. 현대에 맞는, 이 시대가 원하는 것에 걸맞은 작품을 할 수 있을까. 이 시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예술은 무엇일까. 모두 예술이라고 아우성치는 이 시대를 진정시킬 수는 없을까. 빠르게 달려만 가는 세월에, 시간에 진정 쉼을 줄 수 있는 작품을 할 수 있을까.
후회스러움과 두려움과 매일 싸운답니다. 오늘도 팽이처럼 시간에 얻어맞으며 팽팽 돌았습니다. 본 것도 없고 손에 쥐어진 것도 없습니다. 그냥 돌았습니다. 기차는 같은 시간에 검은 연기를 앞세우며 들어와 긴 기적을 울리며 내 앞에 섰습니다.
변함없는 모습, 내 유일한 친구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