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오늘 점심은 작업실에 가서 ‘라면이나 끓여먹자’ 하다가 별안간 발동이 걸려 후배랑 인근 음식점으로 들어갔습니다. 벚꽃이 가랑비 오듯이 살살 떨어지는 창가에 앉아 애호박 된장찌개를 시켰습니다. 밥에서 쉰 듯한 냄새도 나고 돼지고기 기름이 둥둥 떠 별로였습니다. 맛없이 끼니만 때운 기분이 들어서 다음에는 오지 말아야지 하며 마루에서 내려서는데 마루 한쪽 면이 혹부리 할아버지처럼 불쑥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사방이 2미터 될까 하는 정사각형 방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튼튼하게 만든 정사형의 좌대가 있었는데 언뜻 보기에 다리 두께가 5~6센티미터는 되어 보였습니다. 같은 두께의 넓은 판도 위에 덮어져 있습니다. 작업실에서 쓰는 조각 좌대와 똑같은 모양이어서 내심 반가웠습니다.
워낙 무거운 흙, 철근, 심봉대 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조각 좌대가 좀 무지막지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 위에 엉뚱하게도 얄팍한 흰색의 도자기가 앉아 있습니다. 엄마 호랑이와 아가 호랑이가 그려진 도자기, 얼굴에는 새색시처럼 연지곤지가 발갛습니다. 서로의 귀를, 뺨을 꼭 붙여가며 찍은 한 장의 사진입니다. 그래서인지 튼튼한 나무 좌대가 잎이 무성한 오래된 나무로 보입니다. 튼실한 소나무 아래 엄마, 아가 호랑이의 행복한 모습이 보입니다. 벽면에는 커다란 괘종시계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습니다. 기다란 추는 축 늘어져 완전히 힘을 잃었고 꼭 닫힌 시계의 큰 유리문 아래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양이 모양의 헬로키티 스티커가 쪼르르 붙어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80년대에 헬로키티의 선동은 대단했습니다. 아이들 머리핀부터 신발까지 가방, 공책, 필통, 그 속에 연필, 지우개, 여름에 장화, 우산, 비옷, 도시락통…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던 그림과 스티커. 아이들은 이것이 없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어느 집 대청마루, 문갑 위에는 가족들의 ‘지킴이’인 호랑이가 모든 액운을 쫓고, 각자의 시간을 알려주었던 시계추. 자라난 아이들은 호랑이와 괘종시계와 헬로키티… 그 시간과는 멀리 떨어져 갔겠죠.
한참 아이들이 사춘기였을 때가 생각납니다. 친정 부모님은 지금의 내 나이였습니다. 내 몸이 종합병원이듯이 부모님이 그랬습니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 구부정한 허리, 쑤시는 무릎, 조금만 맛있게 드시면 체하시고, 봄철과 겨울에는 감기로 세월을 보내시고, 늙음을 이해하는 것이 무척 피곤했습니다.
아이들 사춘기와 부모님의 쇠약함이 겹친 것입니다. 하루는 앨범을 뒤져 부모님의 결혼사진을 꺼냈습니다. 아버지는 흰색 와이셔츠를 단정히 입으시고 검은 나비넥타이에 뒷모양이 타조 꼬리같이 비죽이 나온 검은 윗도리 주머니에는 하얀 꽃을 꽂으셨습니다. 키가 크셨으니 참 멋있어 보입니다. 어머니는 흰색의 시폰 같은 하늘하늘한 치마저고리며 앞머리 앞에는 하얀 화환을 쓰시고 길게 늘어진 면사포는 앞으로 모아 아래쪽에 하얀 자갈들을 드문드문 놓았습니다. 이 돌이 뭐냐고 여쭈어보았더니 봄바람에 면사포가 자꾸 날려서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놓았다 하십니다. 흑백사진 누렇게 변한 이 한 장의 사진은 한 편의 외국 영화를 보는 듯했습니다. 그분들의 청춘을 보니 세월의 무정함이 무서웠습니다. 어머니 여학교 때 사진, 우리 형제들 어렸을 때, 6‧25 사변 전 가족사진, 그리고 사변 후 막냇동생 돌 때 사진들.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그분들이 주인공이었던 시간의 모습들을 보니 지금의 모습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거실에서 현관으로 향하는 긴 벽면에, 원탁의 테이블 위에 세월의 흐름을 따라 사진들을 나란히 놓기도 하고 붙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 사진을 찾았습니다. 모기장 안에서 자는 모습, 밥을 떠먹여줄 때 받아먹는 모습, 전화기 귀에 대고 옹알이하는 모습… 백일사진, 돌 때 찍은 모든 식구들의 젊은 모습, 70년대 초까지는 흑백사진이 꽤 있었습니다. 여러 모로 상세히 찍은 사진들을 붙여놓고 그들의 사춘기가 여드름처럼 솟아나 힘들 때면 아가 때의 그 모습을 쳐다보며 나는 옛날 흑백필름 속을 거닐 듯 그 속에 빠져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요렇게 예뻤는데, 재롱도 잘 부렸는데, 내 품만 찾았는데, 학교운동장에서 만나면 와락 달려들었는데, 내 손 꼭 잡고 잠들었는데… 내 마음을 누르고 눌렀습니다.
부모님의 청춘의 사진을 보며 그리움의 아쉬움에 눈물짓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내 아이들의 유년 시절 사진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