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삼매경

# 42

by 김경옥

요즈음, 작품이란 말이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언제 작업을 했던가 싶게 작업실이 낯설고 어색하고 좌정한 작품들은 냉정한 얼굴들입니다.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와 녹슨 심봉대를 꼭 붙잡았습니다. 창조적인 삶은 젊은 것입니다. 맞나요? 이 세계의 목적은 놀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술가들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놀이와 창조는 같은 것을 다르게 부르는 단어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 놀이 삼매경, 아이들이 콧등에 송알송알 예쁜 땀 송이가 맺히도록 손에 무언가를 쥐고 열심히 놉니다. 무엇일까? 잡힐 듯 달아나는 시간에 묻습니다. 보이지 않는 아이들 동요처럼 보일 듯이 사라지는 세월에 다가갑니다.


작품에서 차지하는 공간, 이 공간을 잡으려고 평생 흙을 쓰다듬은 지 벌써 50여 년입니다. 그 공간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직도 아리송합니다. 모른다는 말이 진실이겠죠. 질긴 마음의 긴 여행입니다. 그래도 나를 지켜준 것은 차디찬 심봉대와 더 차디찬 조각도. 지극히 무심한 흙더미가 지탱해주었습니다. 내가 그들을 힘껏 의지했다는 것이 옳은 말일 것입니다. 사라졌다가 되돌아오는 마음의 여행. 다만 내 작품 모두가 정처 없는 마음의 흔적일 뿐, 하고 해도, 만지고 만져도, 생각하고 생각해도 낯설기만 한 공간, 오늘도 나는 나그네일 뿐입니다.


내 방식대로 여행을 했습니다. 심봉대에 철사를 꽁꽁 묶을 때도 따끈따끈하게 석고를 바르면서도 지독한 폴리 냄새를 맡으면서도 기묘한 긴장감에 쌓이면서 끝없이 낭만이라는 여행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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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시 45분 기차에 맞추어 기차역 가는 길에 아이비 색깔의 창문이 달린 커피숍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그마한 예쁜 창문입니다. 내 빨강 자전거를 조심스럽게 창가에 세워놓고 문을 밀었습니다. 커피 냄새가 확 나를 잡아끌었습니다. 두리번거리던 내 시선이 벽에 걸린 그림에 멈추었습니다.

여인은 지그시 눈을 감고 바이올린을 켜고 있습니다. 유난히 가느다란 흰 손이 바이올린의 맨 아래쪽을 더듬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매우 낮은음을 켜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여인의 윗도리는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흐르는 듯한 색깔이고 치마는 노을의 색깔이었습니다. 바이올린의 가장 낮은음이 여인의 감은 눈에서 흘러나오는 듯했습니다. 속삭이듯 슬피 우는 바이올린 소리는 소설 같은 그녀의 사랑 이야기 같았습니다.


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이런 감성, 참 오랜만입니다.

매일 지나던 길인데 오늘 발견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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