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날씨가 무척 덥군요. 이런 날은 물장난을 하는 것이 제일이라 생각돼 흐르는 물에 컵과 수저를 들이댑니다. 깨끗하게 씻기지 않습니다. 마냥 물이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물에 맡기지 말고 내 손으로 빡빡 닦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컵과 수저에서 빛이 나며 윤기가 납니다. 이제 깨끗한 컵으로 기분 좋게 물을 마실 수 있고 빛나는 수저로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물은 항상 흐릅니다. 내 안에서 흐르는 영감을 잡아끌어내 열심히 닦고 닦아야 합니다. 집중력이고 열정입니다. 내 안에 꽁꽁 숨어 있는 것을 힘껏 잡아끌어 찬란한 햇빛도 쏘여주고 큰바람, 작은 바람, 따뜻한 바람도 스쳐가게 해 주고 하늘에서 내리는 가랑비도 장대 같은 비바람도 흠씬 맞게 해야 합니다. 송알송알 내리는 눈송이가 가만히 가라앉아 쉬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밤에는 차가운 달빛 조용한 달빛 그윽한 달빛도 보여줘야 합니다. 반짝반짝 영롱한 별빛과도 만나야 합니다. 새벽안갯 속의 부지런한 새소리도 들려줘야 합니다. 오래된 나무처럼 봄답게 여름답게 가을과 겨울답게 의연하게 버티어내는 그 힘을 보여줘야 합니다. 나무는 근심도 걱정도 두려움도 없이 자연에 잘 순응하는 힘이 있습니다.
옛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거문고를 가르치던 스승은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강을 건너갔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기다림에 지친 제자는 우연히 스승의 마음을 깨닫습니다. 바람 소리, 파도 소리, 흐르는 강물 소리,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려는 것이었음을….
오늘도 잠 못 이루며 감성이 열리고 영감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