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de Young> 뮤지엄에서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회고전을 보았습니다. 올해 78세라는데 그 큰 미술관 여러 개 커다란 방에 그림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전시한 그림의 대부분을 올봄부터 미국 요세미티 공원에 머물면서 그린 거라고 하더군요. 그 거대한 스케일이 놀라웠습니다. 입장료가 70불이라는데 시니어 할인이라서 30불쯤 주고 두 번을 가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잔뜩 흥분해서 큰딸에게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엉터리 설명을 해주면서 봤고, 두 번째는 미술사를 전공한 작은 딸 하고 아무 말 안 하고 앞서가며 서서히 돌았습니다.
나는 조각가로 살면서 조각 책보다는 건축 책을 많이 보았습니다. 건축 책을 보다가 만난 화가가 에드워드 호퍼입니다. 샤갈의 그림은 꿈속을 헤매는 깨어나기 싫은 초자연적인 힘이 있습니다. 르네 마그리트 그림은 볼 때마다 그 기발함에 감탄합니다. 조지 시걸(G. SEGAL)은 엽서에 있는 작품을 보고 홀딱 반해서 대학원 논문으로도 썼습니다. 그 시절 책을 구할 수가 없어서 미국문화원에서 어렵사리 20여 페이지의 간단한 팸플릿을 구했습니다. 그야말로 밤을 하얗게 새우며 내 마음대로 논문을 만들었습니다. 작가가 내 논문을 읽는다면 기절하겠네 하면서도 절대 그럴 기회는 없으니 안심했습니다. 2년 후 미국에서 조지 시걸의 두툼한 전집을 만났습니다. 가슴에 안으니 벼락부자가 된 듯 기쁘고 설렜습니다. 어렵게 읽어보니 내가 쓴 논문이 크게 틀린 것은 아니란 걸 알고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을 조금 접을 수 있었습니다. 미술관에서 조지 시걸의 진짜 작품을 관리인 모르게 슬쩍슬쩍 만져보며 감격스러워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예술가의 기둥은 뭘까? 물었다면 조지 시걸의 현대인들의 고독의 기둥, 샤갈의 시 같은 기둥, 호퍼의 형이상학 노래의 기둥, 르네 마그리트의 가시화된 사유의 기둥, 내면의 감정과 정서의 기둥까지 네 개의 기둥이라 말하겠습니다. 네 개의 기둥은 정사각형이 되었습니다. 내 손에 들고 매일 들여다봅니다. 꽉 찬 사각 변의 틀 어디를 보아도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습니다. 그냥 내 얼굴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게 크게도 만들어보고, 주먹을 꼭 쥐고 쑥 넣었다 뺐다 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80세 생일을 맞이하고 2개월 후에 워싱턴스퀘어에 있는 화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합니다. 부인 조는 호퍼의 임종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임종의 순간 호퍼는 집의 작업실에 있는 커다란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는데 단지 1분이면 충분했다.
그는 고통도 소란도 없이 떠나갔다. 그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부럽지 않으세요? 가는 것까지 걸작입니다. 떠나는 것만은 걸작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