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어디 가서 실컷 울었으면 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있는 대로 마음 놓고 엉엉 소리도 지르고 발버둥도 치며 크리넥스 아낌없이 북북 뽑아 콧물도 팡팡 풀어가며 마구 던져 주위에 휴지가 수북하도록 마구마구 울고 싶었을 때가…….
어쩌다 드라마에서 예쁜 아가씨들 애인하고 틀어졌는지 휴지통 앞에 놓고 작정하고 웁니다. 엉엉 발버둥 치며 책상 위에 있는 것 탁탁 집어던지며 맘껏 웁니다. 때로는 시원할 것 같아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집에서든 밖에서든 갑자기 흐르는 눈물…….
안과에 갔더니 “눈물샘이 막혔는데 연세 드시면 오는 현상이에요. 눈앞에 가느다란 관을 끼우면 좀 덜할 텐데 부작용은 바람이 불면 그 속으로 바람이 들어갑니다”라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당해야 되는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옛날에 국민학교 1학년은 왼쪽 가슴에 흰 손수건을 달고 다녔습니다. 또 외삼촌 대학 졸업식에서 외할머니가 두루마기에 하얀 명주 목도리를 하셨는데 목도리 끝으로 수없이 눈가를 닦으셨습니다. 처음에는 늘그막에 낳은 아들 졸업식이 즐거워서 우시는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눈물샘이 막혔던 것입니다.
크리넥스로 찍어내고 휙 버려? 다 늙어 손수건으로 닦고 살지, 그때부터 주머니에 넣고 다닐 만한 손수건 사냥을 시작했습니다. ‘눈가 꼭꼭 찍어내고 살자.’ 기존의 손수건은 가방 열고 손수건 꺼내 눈물 찍고 다시 넣고, 좀 있다 또 꺼내고 여간 불편하지 않습니다. 내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가는 것, 주책없이 아무데서나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야 하는데 가방을 일일이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이 보통 성가신 것이 아닙니다.
첫째는 작아야 합니다. 둘째는 고급스러워야 합니다. 외국 영화에서 부채와 함께 들고 있는 귀부인들 손수건처럼 내 눈물 찍어냄을 잊어버릴 정도로 예뻐야 합니다.
미국에 앤티크 숍에서 가로세로 10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아름다운 손수건을 만났습니다. 어느 할머니가 사계절 세트로 된 것을 장롱 속에서 몇십 년 묵히다가 내놓았고, 나는 재수 좋게 바로 그날 이 손수건들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계절별로 수를 놓은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손수건은 눈물을 찍기에도 아깝습니다.
12월이면 시청 앞에 세우는 크리스마스트리 저리 가라 하는 손수건도 있습니다. 조그만 나무 사이사이 별게 다 달렸습니다. 그림이라면 이해가 가겠는데 이것이 다 수를 놓은 것입니다. 다 살게 마련인가 봅니다. 돈도 삼십 불이 조금 넘었습니다. 까만 바탕에 빨간 수가 가장자리에 놓인 손수건은 무척 아꼈는데 잃어버렸습니다. 지난 10월 풀밭에서 몹시도 찾았던 네 잎 클로버 손수건은 네 가장자리에까지 풀잎으로 테두리를 하고 한쪽 면에 네 잎 클로버를 드문드문 놓았는데 그 손수건을 들 때는 클로버가 상대방에게 보이게끔 눈물을 찍습니다. 당신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클로버 잎에 이슬방울을 주듯…….
레이스를 두른 분홍색으로 선을 긋고 다시 둥근 레이스 안에 함박꽃들이 피어난, 마치 둥근 연못 안에 꽃잎이 둥둥 뜬 것 같은 모양도 있습니다. 포도송이를 그려 오려 붙인 것. 그 위에는 가을 단풍이 앙증맞습니다. 계절별로 들고 다니는 맛은 안 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가방에 넣어두었던 손수건을 소매 사이에 끼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 소매에 붙은 액세서리인지 알았다고 합니다.
외출했다가 들어오면 손으로 깨끗하게 빨아 반듯하게 펴서 널어놓습니다. 서랍 속에 앙증맞은 고급 손수건이 자기 계절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겁습니다. 눈물샘이 막히지 않았으면 이런 사치를 누리지 못했겠죠. 그럭저럭 잘 사는 것 같습니다.
봄꽃이 화사한 손수건, 한여름의 녹음 속에 고추잠자리 손수건. 가을의 열매들을 수놓은 손수건. 겨울의 크리스마스트리와 산타할아버지, 부활의 뜻이 담긴 작은 손수건…… 장롱 속에서 세월을 보내고 넓은 바다를 건너 엉뚱하게도 동양 할머니의 눈물을 찍으러 왔습니다. 그리고 내 화장대 서랍 속에서 계절을 기다립니다. 사람들의 만남도 신기하지만 물건과의 만남도 못지않습니다. 인연입니다.
"기쁨이 넘치고 즐거움이 넘쳐나도 사랑이 넘쳐도 미움이 목까지 차 올라와도 분함이 사무쳐도 욕망과 욕심이 가득가득 넘쳐나도…… 이러한 모든 감정을 푸는 데는 소리보다 더 효과가 빠른 것은 없다. 웃고 있어도 울음이 난다. 좋은 울음 터구나. 울만 하구나. 울음은 하늘과 땅 사이의 우레에 견줄 만하다 한다."
연암 박지원의 울음에 대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