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딩 포레스터

#73

by 김경옥

“멍청한 놈들이 자신은 평생 쓰지도 못할 작품을 가져다가 하루 만에 해체해놓기 전에 말이야. 사람들을 위해 쓴 것이 아니다. 비평가들이 이러쿵저러쿵 헛소리를 시작했을 때 난 결심했지. 한 권으로 족하다고.”


40여 년 전 퓰리처상을 탔던 노작가 윌리엄 포레스터는 세상을 등지고 삽니다. 그가 사는 근처에서 매일같이 농구를 하는 흑인 소년 자말이 글 쓰는 것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세상을 향하여 굳게 닫힌 철문을 열고 자말과 친구가 되고 글을 쓰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십육 세 흑인 소년과 윌리엄은 책 속에서 가까워지고 삶 속에서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자말

내가 알던 어떤 사람은 우리가 실패할까 봐 또는 성공이 두려워 꿈에서 멀어진다고 했지. 네가 꿈을 이룰 거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지만 내 자신의 꿈을 한 번 더 이루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내 인생의 겨울이 지난 세월의 추억과 조우하는 것을 기다려오고 있었나 보다. 내 기다림은 분명히 너무 길어졌을 거다. 너의 도움이 없었다면.


노작가 윌리엄이 모든 것을 자말에게 남겨주고 유언으로 쓴 편지입니다. 참 아름답고 숭고한 우정입니다. 피로 섞인 가족도 있고 교감으로 얽힌 가족도 있습니다. 작가의 꿈을, 이상을 나눈 사랑입니다.


유명한 노 작가는 소설 쓰기에 재능이 있는 소년에게 글쓰기 작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줍니다. 예를 들면 내가 두드리는 타자기의 리듬 소리 따라가기, 작품의 첫 번째 열쇠는 그냥 쓰기, 생각하지 말고 단어, 제목 써놓고 파고들어가기. 가슴으로 초안을 쓰고 다음 머리로 다시 쓰기. 접속사 그러나, 하지만 쓰지 말기. 여기서 자말은 항의합니다. 나도 얼핏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타이프의 단조로운 리듬이 다음 장을 넘기게 해주지. 그러다가 자신만의 단어를 느끼기 시작할 때 쓰기 시작하는 거야. 작가가 최고로 좋았을 때는 자신의 초안을 마쳤을 때이고 그것을 혼자서 읽어볼 때야.”


자말은 농구선수이기도 합니다. 농구공을 손에서 놓지를 않습니다. 뱅뱅 돌다가 겨우 공 하나 들어가는 좁은 바스켓 속으로 쏙 들어가는 것을 보면 머리 쥐어짜며 뱅뱅 애쓰다 글 한 줄 나오는 기분입니다.


영화를 몇 번씩 보고 재능이 있는 십육 세 소년 자말을 의자로 표현했습니다. 높은 창문, 농구할 때 늘 쳐다보던 하얀색 커튼이 내려져 있는 창문은 윌리엄이고, 내려오는 끈에 묶긴 책 꾸러미는 윌리엄의 강의입니다. 나는 고독한 윌리엄과 글쓰기 좋아하는 자말의 우정의 가교가 된 수호천사입니다.


비가내리는 창가에 책.JPG


한시에도 수호천사들이 등장합니다. 고려 때 강일용이 백로를 쳐다보며 ‘푸른 산 허리를 날며 가르네’ 한 구절을 짓고 뒤를 잇지 못해 애를 태웠는데 뒤에 이인도가 그 앞에 ‘교목의 꼭대기에 둥지를 틀고’ 한 구절을 얹어 짝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동서양이 멀고도 멀건만 작가의 착한 마음 아름다운 마음은 서로 통하나 봅니다. 누가 썼든 아름다운 시, 사람의 감성을 흔드는 깨끗한 그저 시입니다. 옛날에는 시를 쓰다가 다음 행이 생각 안 나 고생하다 죽으면, 그다음 세대의 시인이 행을 채워 하나의 시로 완성시켰다는데 어쩌면 이리도 마음들이 시인이었고 작가였을까요. 내 이름이 유명해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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