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아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자기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 요한복음 19장 25~27절
어느 해든 꽃피는 4월 고난주간이 다가오면 읽는 구절입니다. 매해 매번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에서는 목이 메어 끝까지 읽지 못합니다.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어머니,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엄마, 미안해요. 엄마 곁을 먼저 떠나게 돼서….’ ‘사랑해요 엄마, 엄마는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엄마예요.’ 몇 초의 시간이었지만 예수님 머릿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안타까움이 하나의 빛, 하나의 바람, 하나의 선으로 영원히 파고들었을 테죠.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눈물이 피가 되도록 우셨습니다. 예수님은 두렵고 무섭고 외로우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그 이상으로 체험하셨습니다. ‘아들이니다’라고 말씀하셨을 때의 그 예수님, 엄마를 바라보는 그 눈빛, 그 마음속은 대못이 다시 박힌 듯 아프셨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온몸에서는 못자국의 피가 흐릅니다. 아들의 손과 발에 커다란 못이 박힐 때 엄마의 손과 발에도 커다란 못이 박힙니다. 엄마의 머리에도 가슴에도 두 손에도 두 발에서도 피가 흐릅니다. 붉디붉은 가슴에서 흐르는 피, 엄마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하염없이 흐릅니다.
‘아! 어머니, 아들입니다. 온몸이 못자국인 나의 어머니.’
춥고 냄새나는 마구간 구유에 누워 엄마를, 엄마는 허리 굽혀 아들을 보았습니다. 끝없이 눈이 아프도록 보았습니다. 높다란 십자가상에서 어머니를 내려다보는 예수님의 심장 뛰는 소리, 아래서 올려다보는 어머니의 심장 뛰는 소리는 하나가 되어, 그날 밤 ‘이집트로의 피난길’로 돌아갑니다.
‘엄마.’
‘어여쁜 내 아가.’
예수님께서 엄마와 마주 보는 그림이 있습니다. 화가 밀레의 그림입니다. 두 살이 안 된 아기를 죽이라는 헤롯왕의 학살을 피해 강보에 곱게 싼 아기 예수를 가슴에 꼬옥 안고 밤길을 떠나는 성가족의 모습입니다. 화가는 어둠 속에서 별빛보다 환하게 빛나는 아가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갈색 종이에 소묘용 연필로 그린 <이집트로의 피난>은 종이 자체의 색감이 검은 연필과 어우러져 차분하면서도 은은한 달빛, 그리고 지극한 고요함을 만들었습니다. 엄마와 아가의 사랑의 소곤거림이 달빛 가득히 번지고, 엄마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빛, 아기 예수의 얼굴은 달빛 아래 엄마의 빛과 마주칩니다. 하나입니다. 엄마는 내려다보고 아기는 올려다보는, 그 무아지경 속에 떠나는 피난길… 작은 당나귀를 끌고 가는 요셉의 손에 들린 가느다란 줄과 지팡이는 낡고 낡은 것입니다.
높다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아들이니다’ 하면서 엄마를 내려다봅니다. 그곳에는 피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나아가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엄마, 달빛 아래 엄마 품에 안겼던 아들입니다. 말구유에 누워 있던 아들입니다.’
지극한 고요함 속에서 엄마와 아가의 서로 사랑하는 심장 뛰는 소리, 그 심장은 하나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채 어머니를 내려다보는 예수님의 심장 뛰는 소리, 꽉 잡은 두 손을 가슴에 꼬옥 대고 올려다보는 엄마의 심장 소리, 그날 그때 이집트로의 피난길, 그때로 돌아갑니다.
엄마- 어여쁜 내 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