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외국 여행을 가면 앤티크숍에 가는 것이 크나큰 기쁨이요 취미입니다. 단골가게도 서너 군데 있습니다. 이야기가 거창하게 나오는데 보물(?) 같은 앤티크가 아니라 서민들이 실생활에 쓰던 소소한 집기들입니다. 오래 된 고물은 오랜 시간을 견디어온 생명력이 있습니다. 어느 주인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으로 백여 년을 견디어온 것만으로도 귀중합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여학교에 다니실 때 영어와 성경을 가르치셨던 선교사님 집에 놀러갔는데 그랜드 피아노 위에 사기요강이 올라앉아 있더랍니다. 그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과자를 꺼내 학생들에게 나눠주셨던 선교사님이 미국으로 돌아가실 때 그것을 가지고 가셨고 그의 후손들이 아직 갖고 있다면 족히 백여 년이 되는 골동이겠죠. 어찌 귀하지 않을까요.
앞서가는 나라에 가서 앞으로 어떤 것이 나올 것인지를 생각지 않고 이미 그 누가 지나간 자리, 흔적들, 삶에 대한 다른 관점을 보려고 합니다. 어느 가게를 들어가든 요즈음 어디서도 맡을 수 없는 세월이 켜켜이 쌓인 묵은 냄새가 있습니다.
오래된 램프, 다리미, 재봉틀, 부엌에서 쓰던 국자, 찻잔 주전자, 쟁반, 쓰레기통, 편지함, 빨래판, 비눗갑… 최신 장비도 없었을 텐데 어쩜 이렇게 작고 섬세할까. 액자 속에는 가족사진, 결혼사진, 학교 졸업사진도 있습니다. 덕분에 그때의 사생활을 샅샅이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죽고 없을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어떤 인생을 살다 갔을까 생각해보다 쓸쓸해지기도 합니다. 무척이나 다양하고 재미있는 시간여행에 내 기분은 업되었다가 다운되었다가 합니다.
녹이 슨 수도꼭지 위에 새가 노래하듯 앉아 있고, 그 아래로 작은 주먹이 들어갈 수 있는 둥근 모양의 물건에 시선이 멈추었습니다. 손녀딸 단비를 카운터로 밀어붙였더니 긴장된 얼굴로 대신 질문을 해줍니다.
“할머니, 커튼걸이래.”
세트인데 20불이 넘기에 하나만 사도 되냐고 손짓하니 된답니다. 꽤 묵직합니다. 내가 소설가라면 행복한 단편 하나는 쓸 수 있을 텐데… 현재도 미래도 아닌 지난 사람들의 흔적에서 영감을 얻으려 하니 참 아이러니하죠.
앙증맞은 아가 의자와 책상, 브로치, 경대에 붙은 거울에 내 얼굴을 슬쩍 비춰보며 돌아서는데 커다란 붓이 크기대로 죽- 벽에 걸려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검정색인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여러 색깔입니다. 눈이 아프도록 들여다보면서 누굴까, 이 붓으로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분명 화가의 붓일 텐데 왜 여기까지 왔을까, 귀한 그림을 그렸으면 박물관, 미술관에나 있었을 붓일 텐데 생각하니 서글픔이 서서히 일어납니다. 그래도 쓰레기통에 버려지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은 소장했던 분의 애틋한 마음 때문이겠죠.
내 작업실의 작업도구들이 마구잡이로 떠오릅니다. 오래되어 땜질을 한 조각도는 늙으면 사람도 허리가 휘듯이 옆으로 비스듬히 휘었습니다. 조각가의 도구들은 흉기나 마찬가지입니다. 고무망치, 쇠망치, 톱, 끌, 철사, 절단기, 철근, 용접기, 압축기, 접착제, 본드, 크기대로의 붓, 사포 등 석고를 뜰 때 흙을 파내던 도구들은 처음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습니다. 심지어 놋숟갈같이 생겼던 것이 포크 모양으로 변한 것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버리면 엿장사도 사양할 도구입니다.
나 떠나면 내 작품들은 어쩌나 그 생각만 했는데 내 손에서 제 몸 형태 없이 부서져가며 고생한 그것들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작품들은 버젓이 화랑에 놓여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팸플릿에 찍히고 바깥 구경하며 호강이나 했지, 눅눅한 먼지투성이 흙더미 속에서 햇빛 한번 못 쏘이고 녹이 슬어간 참으로 불쌍한 도구들입니다. 평생을 의지하고 살았는데 어디로 보낼 것인가, 나 떠나기 전에 무덤 하나 만들어야 되나… 하는데 딸아이가 “엄마! 그 시커먼 붓 앞에서 뭐해요? 먼지 천지인데. 여기 엄마가 좋아하는 옛날 기차 있어요. 빨리 와요” 합니다. 눈에 맺힌 물방울에 사물들이 굴절되어 보입니다. 아, 불쌍한 것들! 주인 잘 만났으면 어느 박물관, 미술관 유리장 안에 있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