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한 달 정도 있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왜 그랬나 싶지만, 한 달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착실하고 재미없게 뉴욕에 있는 어학원을 열심히 다녔다. 그런 때문인지, 삐까뻔쩍한 기억은 없고, 참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기억에 남는데, 그중 하나가 문틈이 너무 넓었던 학원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 그 문틈으로 바깥의 풍경들이 다 보였다. 줄을 선 사람과 눈인사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눈인사는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누군가 두루마리 휴지로 그 넓은 문틈을 커튼처럼 가려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제야 한국 화장실 용변 칸 문에 붙은 회색 빛깔(?) 스펀지를 떠올려냈다. 풍족할 때는 부족함을 모르는 법이다. 나는 저 회색 빛깔 스펀지를 미국에 수출하면 꽤 잘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다.
한국에 와서는 뉴욕의 화장실 따위는 바로 까먹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미국 화장실의 구조적 기원에 대해 매우 흥미롭게 설명한 글을 읽었다. 기억이 다 정확하게 나지는 않지만, 그 넓은 문틈을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었는데, 하나는 미국이란 나라가 탄생하게 된 계기와 관련이 있었다. 미국은 이주민들이 침략을 해서 세워진 나라이다. 이런 역사로 인해 미국은 자기 보호를 성역처럼 받아들이고, 총기 소유도 허용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화장실 안팎에 있는 사람들이 만약에 있을지 모를 위험한 사태를 대비하려면 화장실 구조가 다소 허술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한다. 화장실 문틈이 있어야 볼일을 보는 동안 밖에서 위험한 일은 없는지 살필 수 있고, 화장실 밖에서도 안에서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지 알 수 있다. 이런 것을 '공격적 프라이버시'라고 한다고 한다.
또 다른 관점은 놀랄 정도로 실용적인 분석인데, 틈이 있어야, 밖에 사람이 있는 것을 알고 노크를 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더 편안히 볼일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화장실 구조에 이렇듯 심오한 뜻이 담겨있다니. 회색 빛깔 스펀지를 수출하려던 나의 얄팍한 야욕이 부끄러워졌다.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서 유치장 내 화장실의 불충분한 차폐 시설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인간의 존엄이 침해됐다고 보아 위헌 결정을 내린 적이 있었다. 수용자들에 대해 감시가 필요하긴 하지만, 불투명한 소재를 이용해 동태 정도를 파악할 수 있으면 충분하고, 소리와 냄새의 직접적인 유출이 있으면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리적 욕구를 침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는 심히 공감한다.
나는 뉴욕의 허술한 화장실 구조를 뉴욕을 떠나는 날까지 적응하지 못했다. 아마도 뉴욕의 그 어학원에 다니던 다른 동양인들도 마찬가지였던 듯 싶다. 그러니 매일 아침 화장실을 제일 처음 이용하는 익명의 누군가가 휴지 커튼을 만들어 서로의 동태 따위를 파악할 수 없도록 조치했던 것이 아닐까. 미국의 프라이버시가 공격적 프라이버시라면, 한국의 프라이버시는 폐쇄적 프라이버시일까. 오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으로서 외부의 침입을 막아야 했던 우리로서는 자연스레 폐쇄적 프라이버시가 필요했던 것일까(너무 나갔나?). 여하튼 법도, 권리도, 결국에는 다 사람 사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라, 역사와 무관하지만은 않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