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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과의 추억(1)

한창 보이스피싱이 극성이었다. 나도 몇 번이나 전화를 받았다. 실력이 점점 진화하고 있다고 하더니, 그 명성은 거짓이 아니었다. 살짝 까칠한 듯하면서, 건조한 말투, 반듯한 표준어, 전문성이 넘쳐흐르는 목소리였다. 긴가민가한 찰나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던 둘째가 시원하게 울어재껴 주었다. 둘째의 울음 덕분에, 나를 향한 피싱범의 낚시질은 헛질이 되었다. 참으로 시의적절하고 칭찬받아 마땅한 울음이었다.


보이스피싱은 여러 면에서 밉상스러운 범죄이다. 하나는 보이스피싱의 피해자들이 부지불식간에 당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많은 사기범죄는 뭔가 피해자도 조금은 적극적인 액션을 한다. 고율의 이자를 직접 찾아 나선다거나, 계에 참여한다거나, 여하튼 집에 가만히 앉아서 당하는 범죄는 아니다.


그런데 보이스피싱은 조금 다르다. '가만히' 집에 있지밖에 않았는데, 부지불식간에 울리는 전화에 당하고 만다. 내가 본 어떤 경우는, 피해자(엄마)에게 어느 날 전화가 와서 아들이 친구에게 돈을 잘못 빌려줘서 납치되었다고 했단다. 엄마는 돈을 바로 주려고 했는데, 평소 보이스피싱 교육을 받은 적이 있던 공무원 출신의 아빠가 옆에서 듣고는 피싱임을 직감하고 재빨리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교묘하게도, 아들의 휴대폰은 정지되어 있었고, 회사에서는 출장 중이라 자리를 비웠다는 답을 들었다. 아빠는 살면서 가장 고민이 되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피싱인 건 같은데, 혹시 피싱이 아니면 어쩌나, 라는 생각을 계속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신고했고, 돈을 받으러 나온 자(전달책)는 바로 현행범 체포되었다. 그분은 휴대폰 정지며 회사에 없는 시간을 고른 선택 등이 모두 피싱범이 계획한 것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거기까지 할 수 있었는지는 그건 미지수이다. 주범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다. 어쨌든 아들이 휴대폰 정지를 하지 않은 것은 맞다.


나는 전달책을 변호하는 쪽이었다. 그녀는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돈을 받아 전달하는 일을 공공기관의 알바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세상 물정에 너무 어두웠다. 공공기관에서 그런 일을 시킬 리가 없는데, 그것을 믿었던 것이다. 피싱 주범은 공공기관의 공문 같은 것을 그녀에게 주면서 자신이 공공기관 직원 인척 했고, 그녀에게도 신분이 정확해야 한다면서 주민등록증을 찍어서 보내보라고 했다. 사회경험이 전혀 없던 대학생은 이를 믿었다. 그녀는 펑펑 울었고, 나는 그 눈물에서 진실을 보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법정에서 무죄가 되지는 못했다.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 사건이다.


피싱범은 사실 거대한 조직이다. 머리는 중국에 있는데, 이들은 웬만하여선 잘 잡히지 않는다, 직접 움직이지도 않고 중국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에 있는 자들을 자신의 수족처럼 부린다. 가장 하수는 피해자로부터 직접 돈을 받는 자들인데, 범죄가 드러나면 이들이 제일 먼저 잡힌다. 심지어 이들은 피싱임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회사의 회계 업무라고 생각하고 해서 최근에 무죄를 받았다는 기사도 보았다. 여기서 지위가 상승하면 사무실에 앉아서 하수가 가져온 돈을 정리하는 역할이 된다.

피싱 전화를 직접 돌렸던 사람을 본 적도 있다. 그의 말은, 중국에 갈 때는 이런 일인 줄 모르고 갔다고 한다. 중국에 가서야 피싱 일인 줄 알고 안 하려고 하니, 핸드폰을 뺏고 가둬두고 때렸다는 것이다. 아는 형사님께 물어보니,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결국 피싱은, 소수 헤드의 치밀한 악의가 많은 사람을 그야말로 골로 보내는 범죄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대법원에서는 2016년에 한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해 그간 처벌되어온 사기죄보다 훨씬 무거운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 총책에게는 20년을 선고했다. 범죄단체 조직죄는 원래는 조직폭력배 조직을 엄벌하려고 입법한 것인데, 대법원이 보이스피싱 조직도 그 내부 관리 등이 조직폭력배 못지않게 체계적(?)이고 위계가 살아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보이스피싱범으로서는 영광스럽게 처음으로 범죄단체조직죄로 이름을 올린 문제의 조직은, 후에 발각될 경우를 대비해 사기 피해금액의 30%를 변호사 비용으로 적립해놓는 준비성과 철두철미함을 보였다고 한다. 헤드가 되려면 그 정도 예지력은 필요하다.

아무튼, 보이스피싱으로, 연루된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일단 나부터 보이스피싱에 속지 않아야 한다. 그때 그분을 보니 피싱 예방교육은 생각보다 꽤 예방 효과가 있는듯했다. 피싱 예방교육 혹시 받으실 일 있으면 졸지 맙시다, 그리고 피싱 전화 오면 '내 너를 기다렸다'이러고 끊어줍시다. 속지 않다 보면, 속이는 이도 없어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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