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감탄하며 본 광고가 있다. 촬영 스튜디오에 있는 남녀 성인들과 소년은 ‘여자 아이 같이 뛰어보라’는 주문을 받는다. 감독은 그들에게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처음으로 떠오르는 행동을 보여 달라고 요청한다. 그들은 하나 같이 비슷한 동작으로 뛴다. 다리와 팔을 살랑살랑 횡으로 움직인다. 감독은 ‘여자 아이 같이 싸워라’, ‘여자 아이 같이 던져라’라고도 주문해보았는데, 요청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살짝 우스꽝스러운, 비슷한 동작을 재현한다. 이후 감독은 ‘어린 여자 아이’에게 ‘여자 아이처럼 뛰어보라’고 똑같이 주문한다. 이에, 이 아이는 열심히, 팔과 다리를 힘차게 앞뒤로 움직이며 뛴다. 감독은 그 여자 아이에게 ‘여자 아이처럼 뛰라’라는 자신의 말이 어떻게 들렸는지를 묻는데, 아이는 ‘최대한 빨리 달리라는 뜻’으로 들었다고 대답한다.
<여자답게, 위스퍼 광고>
사실 딸아이가 갔던 운동 학원에서 이와 똑같은 일을 본 적이 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제자리 뛰기를 시켰는데, 여자 아이들에게는 종아리를 11시 방향으로 차는 동작(반듯하게 뒤로 차는 게 아니라)을 보이며, 여자 아이들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농담을 하셨다. 운동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왠지 내 딸을 그곳에 두고 싶지는 않았다. ‘여자 아이’가 어떠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라기를 원치는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그래도 예전에 비해 눈에 보이는 남녀차별은 많이 줄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무것이기도 한 그러한 차별의 말과 행동들은 여전히 은연중에 우리 주위에 적지 않게 숨어 있는 듯하다. 내 생각에, 그런 무의식적인 차별의 코드들은 ‘광고’에서 많이 나타난다. 광고는 캐릭터를 구현하기에 드라마 등에 비해 시간이 너무 짧고(예를 들어 가부장적인 남자가 나오는 경우, 그것은 극 중 캐릭터의 문제라고 ‘분리’시켜 생각하는 것이 드라마가 광고보다 더 쉽다), 게다가 반복적이며, 강렬해서, 광고 속의 숨은 메시지는, 미처 생각하거나 반항할 틈 없이, 부지불식간에 물처럼 우리에게 흡수된다. 남녀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심어줄 수 있는 광고는 많이 떠오른다. 자동차 광고에서 후방 카메라 기능을 광고하기 위해 “여자니까 봐준다, 여자니까 뒤를 봐준다.”라고 쓴 카피, 소주 광고에서 “술과 여자친구의 공통점, 오랜 시간 함께 할수록 지갑이 빈다.”라고 쓴 문구, 모바일 지갑 광고에서 “놀러 갈 땐 우리 차, 기름 넣을 땐 오빠 차”라고 한 카피, 또 얼마 전에는 화장을 한 여자아이의 입술을 클로즈업하여 논란이 된 아이스크림 광고도 있었다. 그나마 이러한 문제를 인지를 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연스레 편견은 전이될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영국의 광고표준위원회가 유해한 성 고정관념을 담은 광고를 규제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이러한 규제 논의는 다이어트 보조제 지하철 광고에서 촉발됐다고 한다. “Are you beach body ready?(바닷가에서 선보일 몸 준비됐어?)”라는 문구와 함께 비키니를 입은 여자 모델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이에 대해 사람들이 비현실적인 몸매를 부추긴다며 항의한 것이 시작이었다.
위 광고표준위원회는 ‘유해한 고정관념이 아동과 청소년 및 성인의 선택과 기회 등을 제한할 수 있다’며, 광고에 담아서는 안 되는 몇 가지 예시를 제시했는데, 예시로서 1)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때 남편은 이를 지켜보고 아내만 치우는 광고(가사 책임이 여성에게만 있음을 은연중에 묘사하는 광고), 2) 기저귀를 잘 못 가는 남성, 주차를 잘 못하는 여성 등 특정일을 잘 해내지 못하는 것이 성별의 차이인 것처럼 묘사하는 광고, 3)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성별 고정관념에 따른 이상적인 신체를 갖지 못해서라고 생각하게 하는 광고, 4) 성별에 따른 전형적인 성격으로 묘사되는 소년의 대담함과 소녀의 세심함과 같이 성별의 차이에 따른 대비를 강조하는 광고 등이 있었다. 광고의 파급력을 생각하면, 실용적이고 실효성 있는 규제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했다.
우리나라에도 실질적 양성평등을 목적으로 한 양성평등기본법이 있고, 이 법에서 성별영향평가(제정, 개정을 추진하는 법령 등이 성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 성인지 교육(법령, 정책, 관습 및 각종 제도 등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는 능력을 증진시키는 교육) 실시가 규정되어 있다. 법률에 성인지 교육이 어렵게 정의되어 있으나, 다른 성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편견 없이 대하는 자세를 가르치는 교육 정도를 의미하지 않나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남자는 울면 안 돼’, ‘남자는 한입으로 두말하는 것 아니야’ 같은 말도 하나의 억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두에 소개한 광고는, 여자 아이처럼 뛰라는 말을 최대한 빨리 달리라는 의미로 이해했다는 여자 아이의 대답으로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여자 아이처럼 뛰라는 요청에 대해 성인들이 동일한 반응을 보인 것은, 사회의 편견이 가진 후천적 학습 효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광고에서 한 여성은 “누군가가 ‘여자아이 같이 달린다’라는 말을 좋지 않은 의미로 쓴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자 아이 같이 뛰고 여자 아이 같이 공을 차고 여자 아이 같이 걷고 여자 아이 같이 아침에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나는 여자 아이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특정 성이라는 것은 그저 하나의 ‘사실’ 일뿐, 특정한 판단으로 이어지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광고는 감독과 (광고 도입부에 여자아이처럼 뛰었던) 성인 여성과의 대화로 끝을 맺는다. 감독이 “이제 여자 아이 같이 달리라고 하면 다르게 달릴 것 같나요?”라고 묻자, 해당 여성은 “네. 저답게 달릴 겁니다.”라고 답한다. “저답게”라는 말이 주는 울림이 무엇보다 컸다. 아이들이 성별에 따라 은연중에 부여되는 사회적인 편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이, 오롯이 한 사람으로만 자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꿈꿔본다.
<언론사람> 9월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