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공표죄란 경찰이나 검사가 직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정보를 기소 전에 공표했을 때 처벌하는 범죄이다(형법 제126조). 기소도 이루어지기 전에 수사기관이 수사 내용에 대해 자유로이 공표하면, 피의자는 사실상 언론과 여론의 재판을 받게 되어 인권이 침해되기에, 이를 처벌하는 규정을 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금지 실익에도 불구하고 피의사실공표죄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2008년부터 피의사실공표로 300건이 넘는 사건 접수가 있었는데, 단 한 건도 기소가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법무부훈령인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에서 정한 기소 전에 수사 내용을 공개하는 예외 사유 규정이 모호하다는 비판도 있었고, 수사기관이 수사기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수사하고 기소 결정을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있어왔다.
그렇지만 피의사실공표죄의 이와 같은 사실상의 사문화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법원에서는 국가에 대해 피의사실을 공표한 수사기관의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인정하여 국가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는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특별사면을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수사결과 발표에 반발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5,000만 원 배상책임을 인정받았다. 법원은, ‘헌법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점, 기소 전 단계에서 수사기관이 단정적인 표현은 피했어야 했는데도 피의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한 증거까지 나열함으로써 이를 듣는 언론이나 국민들이 피의사실을 저질렀다고 믿게 한 점’ 등을 들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창원지방법원 2018. 8. 23. 선고 2015가단79600판결)*. 이후에도 한 경찰관 개인이 방송사 기자에게 전화 통화로 피의사실에 대해 말했고, 이것이 방송이 된 일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피의자가 방송사 및 국가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를 한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방송사에 대해서는 보도의 공익성을 인정하여 청구를 기각하였지만, 국가에 대해서는 내용의 공공성이 있다고 하여도 공표의 절차와 형식 등에 문제가 있다고 봐서 2,000만 원 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수사기관이 정해진 공표 절차 및 관행을 따르지 않고, 개인적인 전화 통화를 통해 피의사실을 알린 경우였기 때문이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10. 11. 선고 2018나36945판결)**. 그렇지만 위의 두 판결과 다르게 피의사실공표와 관련해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판례도 있다. 해당 판결 근거로서, 수사기관이 익명의 형식으로 공표했고, 피의사실 발표가 공식 절차를 거쳐 보도자료로 배포된 점 등이 들어졌다. 참고로, 이 판결에서는 피의자가 수갑을 차고 조사받는 모습을 언론기관이 촬영하도록 허용한 것은 위법이라고 보아, 이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6. 28. 선고 2017가단5047454)*** .
* 피고 항소로 2심(창원지방법원 2018나59912) 진행 중임.
** 대법원 확정(2018다285274).
*** 원, 피고 항소(피고는 부대항소)로 2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19나40835) 진행 중임.
위 판례들을 통해, 피의사실공표의 허용/불허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법무부가 2010년에 마련한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을 살피는 것도 위 기준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위 공보준칙 제10조에서는 예외적으로 기소 전 공개를 허용하는 사유로서, 1) 사건관계인의 명예 등을 침해하거나 수사에 지장을 초래하는 오보를 방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 2) 범죄의 급속한 확산 등이 우려되는 경우, 3) 국민이 즉시 알 필요가 있는 경우, 4) 범인 검거 등 정보제공을 위해 국민 협조가 필수적인 경우를 들고 있다. 또 공보의 방식과 관련해서는, 원칙적으로 소속 검찰청의 장의 승인을 받은 공보자료를 배포하는 방식으로 하되, 사안이 복잡하거나 언론에서 확인을 요청하는 사안 등에 대해서는 구두브리핑을 허용한다(공보준칙 11조, 12조 참조). 공표의 범위와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사항만을 공개하도록 규정하면서, 그 대표적 내용으로 1) 익명 보도가 원칙이지만, 공적 인물인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실명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고, 2) 사건관계인의 사생활, 사건관계인의 진술, 증언 내용, 증거의 내용 및 증거가치 등 증거관계 등에 대해서는 공개를 금지하고 있다(공보준칙 13조 내지 21조 참조).
***** 이 조항이 모호하고 포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렇다면 위 공보준칙이 현실적으로 잘 지켜지고 있는가. 불행히도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작년 사회적 공분을 부른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만 보더라도, 기소도 되기 전에 이미 수사기관의 수사발표를 통하여 쌍둥이 자매의 시험지와 답안이 적혀 있는 메모지, 시험장에 가지고 들어간 포스트잇, 자매의 휴대폰 내 암기장 사본 등 증거물이 공개되었다. 이것들은 재판에서 증거조사 절차를 거쳐 증거능력을 인정받아야만 유죄 판단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증거물들이었다. 공판절차가 시작하기도 전에 증거물들이 언론에 공개되어버린다면, 피고인은 유죄 심증을 이미 강하게 받는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되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심각하게 훼손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에 이 문제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자성의 목소리나 비판의 움직임이 강하지는 않았었다.
이런 것을 보면 어쨌거나 피의사실공표를 둘러싼 만연한 관행은 개선 필요성이 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법무부도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인권 보호를 위한 수사 공보준칙’을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으로 바꾸려고 했을 것이다(라고 믿고 싶다). 새로운 규정에는 수사내용 유포 검사에게 장관이 감찰 지시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피의사실공표죄가 그 동안 유명무실했던 현실을 감안할 때, 피의사실 공개를 합리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렇지만 새로운 규정에 모두 찬성하는 것은 아닌데, 새 규정 중에는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등 수사 대상이 공인이더라도 실명 공개를 금지하는 내용도 있다고 보도됐다. 공인에 대한 피의사실 공개와 관련해서, 그 동안 폐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의 감시기능을 고려할 때 일단 금지하고 보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대법원도 ‘피의자가 갖는 공적 인물로서의 특성과 그 업무 내지 활동과의 연관성 때문에 일반 범죄로서의 평범한 수준을 넘어서 공공에 중요성을 갖게 되는 등 시사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피의자의 실명 보도를 허용할 수 있다’(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7다71판결)고 판결한 적이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오히려 공인에 대해서 실명 보도는 허용하되, 내용의 공개 범위에 있어 제2의 논두렁 시계 사건이 생기지 않도록, ‘사건관계인의 주장 및 진술·증언 내용, 진술·증언 거부 사실 및 신빙성에 관련된 사항’ 등이 기소 전에는 절대 공개되지 않도록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어쨌거나 아쉬운 점은 내로남불과 오비이락, 둘 중에 하나인 것이 분명한 시기상의 부적절함으로 인하여, 내용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는 뒤로 빠진 채 소모적인 정치 공방으로만 흐를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