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교육 이야기
임신, 출산 기간 동안 어찌하지 못하고 길러온 머리를 손질하러 아내가 미용실에 갔기 때문에 낮 동안 내가 유니온을 도맡아 보게 되었다.
이 날도 수면교육을 계속 이어 나가 보기로 했다.
아내가 나간 후 유니온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책장을 보다가 박준 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꺼내 들었다. 띠지가 많이 구겨져 있던 것을 보니, 내가 가방에 한참 넣어 다니고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서사가 있는 부분은 나만 속으로 읽고, 아름다운 표현이 있는 부분들을 골라 유니온에게 읽어주었다. 술을 소재로 쓴 글도 건너뛰고 나만 읽었다. 뜻을 알지 못하지만, 유니온은 내 목소리가 들리면 웃고 좋아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들려주는 이야기의 의미를 알지 못하겠지만, 아름다운 표현 하나 정도가 기억에 남아 언젠가 자랑하듯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가끔 삶이 남루하게 느껴질 때에도, 꺼내어 곱씹으며 삶을 치장해 줄 수 있는 말 하나가 남았으면 한다.
아기 운동장 피아노도 한참 연주하게 했다. 그야말로 발연주가 훌륭하다. 1-2주 전까지만 해도 장난감에 대한 열정이 크지 않았는데, 이번 주말부터는 훨씬 집중하는 것 같았다. 절정을 향해 치닫는 피아니스트의 격정적인 연주와 손동작처럼, 유니온도 열정과 혼을 담아 온몸을 격하게 버둥거리며 장난감을 흔들고 발로 연주를 한다.
한참을 놀았다는 생각이 들어 유니온을 침대에 눕혔다. 잠깐 달래주기 위해 들어 올리거나, 안아주는 일도 반복되면 수면 의식과 연결되어 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본 것 같아, 가급적 그런 행동도 자제하고 온전히 혼자 힘으로 잠들 수 있게 유도하기로 했다. 버둥거리고 울 때, 가슴과 팔 부분을 내 손으로 살짝 압박해주고 입으로는 쉬이이 하는 소리를 내주었다. 베이비타임 어플에서 제공되는 브람스의 자장가도 틀어두었다. 유니온은 생각보다 어려워하지 않고 잠들었다.
유니온이 잠든 동안 아내는 메신저로 미용실에 있는 어린 형제와 그 아버지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단호한 말투로 아이들을 컨트롤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나는 어릴 때 종종 형과 함께 미용실에 다녔다. 형은 점잖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나는 형을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멋있고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따라서 얌전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끔 형은 나이 어린 나를 위해 종종 어린이가 할 만한 행동이라고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배려심 강한 행동을 해주기도 했다. 친구들(분들이라고 해야 하려나)과 모여 맛있는 것을 먹기로 한 때에도, 일단 나를 재우고 나가겠다고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형이 어린 나에게 해주었던 행동들은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른들도 하기 어려운 것들처럼 느껴진다. 재판을 하며 종종 보게 되는 어른의 ‘밑바닥’과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다.
아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비슷한 방식으로 두 차례 더 유니온을 재웠다. 유니온이 이렇게 빠르게 적응해서 등을 대고 누운 채 잠들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유니온이 잠들 동안 계속해서 브람스의 자장가를 재생해둔 덕분에, 나는 이날 꽤 긴 시간 브람스 자장가를 듣게 되었다. 몇 번을 들어도 평화롭고(유니온의 보채는 울음소리가 음악과 섞이면서 무뎌지는 듯했다.) 감미롭게 들리는 선율에 새삼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음악가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는 아내와 누워 끝나가는 주말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일요일 오후 무렵부터 출근하는 것에 대해 초조함을 느끼곤 하는데 이때도 그 초조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내는 내가 출근하고 나면 혼자 맞이하게 내일의 육아에 대한 불안감을 털어놓았다. 유니온은 잠들기 전 어떤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