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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동KimLawdong Dec 13. 2022

81일과 82일

81일 - 혈액형 검사/ 82일 - 뒷동산을 오르다

81일 - 혈액형 검사

81일에는 유니온의 혈액형 검사를 하러 소아과에 갔다. 지난주 2개월 예방 접종을 하러 갔을 때 했어야 했는데, 부부가 함께 까맣게 잊어버렸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원장님께서도 “지난주에 하고 가시지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또 오셨네” 하고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셨다.


유니온의 문제의 손가락(몇 주 전, 처남이 가족 앨범 사진을 보다가 유니온이 추켜올려선 안 될 손가락을 추켜올린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몇 장을 발견했다. 당연히 의도한 행동은 아니고…)에서 채혈을 하셨다. 꽤 많은 양을 꾹꾹 짜내듯이 채혈하셨다. 이후 선생님께서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설명해주셨다. 알갱이처럼 뭉치는 게 있는 쪽이 유니온의 혈액형이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명확히 보이지 않았는데, 다시 테스트 약을 떨어뜨린 쪽에서 혈액형이 확실히 확인되었다. 열대어의 무늬처럼 점박이 같은 것이 형성되어있었다. 온 가족이 같은 혈액형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장인어른께서 유니온의 겨울 옷을 선물해주신다고 하여 오후에는 아내와 함께 인터넷으로 한참 옷을 골랐다. 패딩도 후드 집업도 모두 자그마하니 귀여웠다. 며칠 새 날씨가 쌀쌀해져서 선물 받을 옷을 고르는 김에 유니온의 실내복을 몇 개 주문했다. 한 번 주문했다가 일부만 다른 옷으로 변경하려고 주문을 취소했는데, 우리가 취소한 상품의 재고 반영이 되지 않아 품절로 떠버려 한참을 기다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재고 수량 확인이 될 때까지 버텨 마침내 원하던 모든 옷을 주문했다!


2달 전쯤 조리원에서 찍어둔 사진을 보면 너무나 조그마한 유니온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얼굴은 부기가 빠지지 않아 부어있고, 몸은 겉싸개로 싸놓으면 새끼 강아지처럼 작았다. 내 손가락 네 개 정도면 얼굴이 다 가려져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은 몸도 커지고 팔다리도 길어졌다. 부기가 빠지고(나는 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잘 먹이라는 가족들의 전화를 받곤 한다.) 선이 뚜렷해지면서 얼굴이 신생아 티를 벗어 가끔은 어린이 같아 보인다. 태어났을 때의 퉁퉁 불어있던 얼굴에 비하면, 미적으로는 지금이 훨씬 훌륭하지만 가끔 태어났을 때의 그 모습이 영영 가버리는구나 싶어서 아쉬운 마음도 든다.


일부러 조금 크게 주문한 옷들이지만, 아마 금방 맞지 않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또 지금 이 무렵의 모습이 다시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옷을 입히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물론 그전에 택배박스 뜯기라는 힘든 관문을 넘어서야만 한다.



82일 - 뒷동산을 오르다

오후에 아기띠로 유니온을 안고,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왔다. 사는 곳 뒤쪽에 있는 산으로 향했다. 예전에 아내와 별생각 없이 등산하러 왔다가 꽤 힘들게 올랐던 산이었다. 유니온을 안은 채로 본격적으로 등산을 할 수는 없으므로, ’동산‘이라고 표시된 이정표를 따라 야트막한 곳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아이디 smellypumpy)


햇살이 좋아 유니온의 머리 위를 챙이 있는 모자로 가려주었다. 얼굴을 가려준 채로 안고 걷다 보니 유니온은 금세 잠이 들었다. 잠든 채로 하는 등산이라니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산까지만 오른 후 내려와 동네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집 쪽으로 다시 향했다. 유니온은 집 근처로 오자 늘 그렇듯 놀라운 감각을 발휘해 눈을 떴다.


아내가 유니온을 가지기 전에는 날씨가 좋은 날 종종 등산을 했었다. 한참 등산을 하고 내려와 양꼬치를 먹기도 하고(이왕 걸은 김에 끝까지 걷자고 내가 우겨서 버스를 타지 않고 버스 두 세정거장 거리 가게까지 가는 바람에 아내가 무척 힘들어했다.), 진달래가 아름답게 피는 산에 진달래 축제를 보러 가기도 했다. 전에 살던 집 바로 뒤에도 산이 있어서 날씨가 좋을 때면 적당한 코스로 한 바퀴 돌고 오곤 했다. 자연이 좋은 곳 말고 이제는 평지에 살고 싶다고 가끔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퇴근하여 집에 올 때도 의도치 않게 등산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함께 운동하는 시간이 행복하고 좋았다.


산을 오르고 내릴 때면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산에 갔을 때의 일들이 생각나곤 한다. 내리막 길에서는 말발굽처럼 투그닥투그닥하면서 내려가면 미끄럽지 않고 수월하다는, 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종종 생각이 난다. 어릴 때 등산을 다니던 산에 한 번은 크게 불이 났었는데, 불이 모두 진화되고 어느 정도 정리된 이후에 올라간 산에서도 여전히 타는 숯향 같은 것이 났다. 가끔 그때 그 향을 맡았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버지와 함께 금정산성에 갔을 때는 끝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난다. 반면, 같은 코스를 어머니와 함께 갔을 때는 중간 어디쯤에선가 챙겨간 치킨을 먹고 내려왔다.


몇 년 정도 시간이 흘러야 하겠지만, 언젠가 유니온이 잘 걸을 수 있게 되면 가족이 함께 산에 오르는 일이 있을 것이다. 어릴 때 나는 부모님과 함께 등산을 많이 다녔지만 등산하지 않고 싶었던 날도 꽤 있었던 것 같은데, 유니온은 어떨까. 투덜거리는 날도 있고, 씩씩하게 오르는 날도 있을 것 같다. 어느 날은 등산보다 등산 후에 먹은 음식이 좋아서 좋은 기억으로 남을 때도 있을 것이다. 성인이 되고 나면 때로는 음식과 술을 맛있게 먹기 위한 의식의 일환으로 산을 오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정말로 산이 싫어서 본인의 의지로는 아예 가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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