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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동KimLawdong Jul 12. 2023

프롤로그

어쩌면 따라 해도 괜찮을지도

어릴 적 TV에서 <요리왕 비룡>이라는 만화를 방영했다. 저녁 시간 무렵에 틀어주던 것이라 형과 나는 저녁 먹을 것을 TV앞으로 가지고 와 저녁을 먹으면서 봤다. 형은 저녁을 먹으며 학원 갈 준비를 했던 것 같고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어 그냥 저녁을 먹었다.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먹방처럼 본 셈이다. 가끔 이게 요리 만화인지 천하제일무술대회인지 헷갈리게 하는 기괴함이 있었지만 탐스럽고 화려하게 차려지는 음식들을 보는 재미, 그 음식을 맛보는 사람의 행복에 취한 (어쩌면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한) 표정이 주는 웃음, 신성한 음식으로 누군가를 해하려는 '악인'에 대한 징벌이 끝난 뒤 주인공이 마치 암행어사 마패 꺼내듯 숨겨둔 1급 요리사 징표를 휘날릴 때("나 사실 오성급 호텔 셰프요!")의 쾌감이 있어 즐겨보던 만화였다.


(직접 그림) 만화 속에서 주인공이 해준 맛있는 음식을 먹은 사람의 표정은 저렇게 변했고, 광활한 우주와 반짝이는 별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요리왕 비룡>을 보고 있으면 무엇보다 만화 속 요리사(혹은 무도인?)들이 하는 것처럼 뭔가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곤 했다. 물론 만두피 안쪽과 바깥쪽의 압력차로 낄낄거리는 소리를 내는 '웃는 만두'처럼 만화적 상상력으로만 구현 가능해 보이는 음식도 있었지만, '황금계란볶음밥(밥알 하나하나에 계란을 빠짐없이 입혔다고 했다.)'처럼 냉장고에 있는 재료와 밥솥에 있는 밥으로 도전해 봄직한 음식도 있었다.


만들었다고 하기도 조악한 음식이었지만 어쨌건 만들었다가 실패한 것도 있었고(계란을 밥과 섞어 볶아버리면 죽이 되어버린단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괴식이라 불릴 것 같은 음식도 있었지만(미니돈가스를 잔뜩 구워 밥 위에 올린 후 케첩을 뿌려 비벼 먹었다! 퇴근하고 오신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느끼한 걸 먹을 수 있냐는 느낌으로 놀라셨다.) 만화를 보며 먹을 음식을 그렇게 준비(?)하면서 나름대로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어릴 적 본 만화에서 영감을 받아 요리사나 요식업계 종사자가 되었다면 흥미롭고 기승전결을 갖춘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나, 그 뒤로 딱히 '요리'를 배우거나 하진 않았다. 그렇게 <요리왕 비룡> 중 '요리'는 생계와 이어지지는 않았다. 남은 것은 '왕'인데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인 관계로 '왕'이 되지도 못하였다. 하지만 내가 먹을 정도의 소량의 음식을 준비하는 게 싫지 않다는 느낌, 그 과정이 무작정 어렵기만 한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재미있다는 느낌만은 남아있었던 것 같다. 결혼한 이후로 부부가 함께 먹을 음식을 내가 종종 준비하곤 했고, 어쩌다 보니 최근에는 아이의 유아식도 몇 번 만들어보게 되었다.



'망한 유아식 레시피'*에 관한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다음과 같다. 아내는 같은 동네에 사는 아기 엄마들 카톡방(맘톡방)에 들어가 있다. 얼마 전 아이에게 해주었다가 '망한' 레시피가 있었는데 아내는 오늘은 이런 거 먹였다,라는 느낌으로 맘톡방에 해당 요리의 사진을 올렸다. 그랬더니 어떤 아이의 어머니께서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궁금해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진상으로 제법 그럴듯해 보이기는 했고 아마도 레시피를 여쭤 본 분은 망한 것을 몰랐으니 물어보신 것일 수도 있겠으나(안 돼요 도망가세요!) 아무튼 누군가 나의 망한 유아식 레시피를 물어본 분이 있었다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사진을 보고 본인이 먹고 싶다고 말한 친구도 있었다!


그래서 가끔 유아식을 해주었는데 그중에서 '망한' 것들이 생기면 망한 레시피들을 글로 모아 보기로 했다. 솔직히 계량 같은 것도 없고 마구잡이로 한 것이라 레시피라고도 부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냥 그때 그 음식을 만들었을 때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기록하는 망한 유아식 '일기'에 가까운 글들이 될 것이다. 매거진 이름에는 "돈두댓"이라는 한때 인터넷에 유행했던 일종의 밈을 붙였다. 망한 레시피들이니 따라 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문이다.


그렇지만 절대로 따라 하지 마시라,라고 경고문을 붙이진 않았다. 관찰해 보면 성인이 그렇듯이 아기들도 식성이 모두 다르다고 느낀다. 우리 집 아이에게는 망했던 음식에서 영감을 얻은 음식을 어떤 아이들은 좋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모두에게 망한 음식도 세상엔 존재한다.). 저렇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용감하게 해 먹이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희망과 용기를 얻는 분도 계셨으면 좋겠다. 만들어줬지만 먹지 않아도 다른 잘 먹는 음식(공산품! - 우유, 시판 유아식)으로 영양을 보충해 주고, 뱉은 것은 눈물을 흘리면서 열심히 치우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스리슬쩍 이번 글의 부제목으로 "어쩌면 따라 해도 괜찮을지도"라는 구절을 붙였다. Never Do That은 아니다.


흘린 것은 열심히 치우면 된다! 볶음밥은 시판이었던 것 같고, 손 그림자가 휘감고 있는 계란찜은 직접 해주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결과는 저렇게 되었다.



나 스스로는 이번 글을 통해, 비극적인 상황을 우리 민족의 전통이라고 배운 해학의 정서로 풀어내면서 무력감이나 우울감에서 벗어나보려는 의미도 있다. 치우면 된다고 써두긴 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시간을 들여 음식을 준비했는데 먹이는 데에 시간은 한참 걸리고, 시간은 들였는데 절반도 채 먹지 않고, 치우느라 저녁 시간이 다 가버리면 그 상황 자체가 무력하게, 우울하게 다가올 때가 많다. 그러다가 그 부정적인 감정이 육아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과 느낌으로 번져버리면, 걷잡을 수 없게 기분이 망가져버린다. "허허허 망했다! 망한 거 구경 오십시오!"하고 가볍게 다루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누군가에게 대접하기에는 부족한 실력이고(사실상 아내한테만 당당하게 내올 수 있는 정도다.), 자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함께 먹을 음식을 준비할 때 행복을 느끼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생각 끝에 얻은 결론은 '누군가를 독살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아닌 한, 음식이 잘 되든 못 되든 음식을 만들어내는 마음에는 남을 해하려는 마음이 없어서'라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내가 만든 것을 먹고, 배가 부르고, 즐거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든다(악하게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은 요리왕 비룡이 모두 없애버렸다구!). 그냥, 그런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다들 한 번씩은 용감하게 시도해 보았으면 좋겠다.



* 참고로 '망함'의 기준은 대략 아래와 같은 것이다.

1. 한 시간 이상 먹이려고 했으나 절반을 채 먹지 못했다.

2. 식탁이나 바닥에 흘리고 뱉은 것이 너무 많아 치우면서 마음 수양이 필요했다.

3. 아이를 재운 후 나도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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