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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동KimLawdong Jul 13. 2023

닭가슴살브로콜리 크림파스타

사진만은 그럴듯했다

첫 글의 주제는 닭가슴살브로콜리 크림파스타로 골라보았다. 맘톡방의 어떤 어머니께서 레시피를 궁금해하셨고, 친구도 본인이 먹고 싶다고 말했던 바로 그 음식이다. 아내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홍제천에 산책을 갔다가 돌아와 아이의 저녁으로 준비하였던 것인데, 아이가 평소에 간식으로 유아용 파스타면을 삶아주면 잘 먹기도 했고 집에 닭가슴살과 양파가 있어서 소위 '냉털(냉장고 털어먹기)'의 목적도 있었다.



망한 레시피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어쩌면 실제로 한 것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1. 양파를 잘게 썰어서 볶아주기.

- 아이는 이유식을 먹을 때부터 양파를 좋아하는 편이다.


2. 닭가슴살 삶은 것도 잘게 썰어 넣어 양파와 함께 볶아주기.

- 닭가슴살이 냉동되어 있던 것이라 혹시나 다 익지 않을까 봐 먼저 삶은 후에 사용하였다.


3. 멸균우유와 분유(가루 분유 녹인 것과 액상 분유)를 닭가슴살과 양파를 볶은 팬에 충분히 부어주고, 잘게 썬 브로콜리를 팬에 넣고 끓이기.

아이가 식감이 강한(아삭한) 재료를 잘 먹지 못하기 때문에 브로콜리가 충분히 익을 수 있도록 오래 끓였고, 중간중간에 우유 양이 부족해지면 물과 분유를 보충해서 부어주었다.

혹시나 비린내가 날까 봐 우유와 함께 분유를 넣을지 말지 고민하다가, "조금이라도 익숙한 맛이 있어야 잘 먹지 않을까"하고 부부가 의견의 일치를 본 후 분유도 함께 넣었다. 나중에 맛을 봤을 때 비린 향이 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안 먹는 게 문제였지...


처음엔 브로콜리도 양파랑 같이 먼저 볶은 후 넣으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브로콜리는 20분 이상 물에 담가서 충분히 씻어줘야 돼"하고 말해주었고 결론적으로 세척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려 나중에 그냥 우유를 넣고 끓일 때 같이 넣어 익히게 되었다. 음식이 괜히 망하는 게 아니다


4. 이렇게 소스가 완성!

이 되었으면 좋았겠으나, 옆에서 보고 있던 아내가 재료를 썰어 둔 것이 너무 커서 아이가 먹기 힘들 것 같다고 하면서 다짐기(차퍼)에 넣고 잘게 썰어야 될 것 같다고 말하였다.

음식이 괜히 망하는 게 아니다2

이 단계에서 잠깐 익은 정도를 보려고 맛을 봤는데, 내가 먹기에 나쁜 맛은 아니었다. 그냥 소금 간을 더해 내가 저녁으로 먹고, 아이에게는 다른 것을 먹였어야 했던가!

소스를 끓이고 있다. 안에 들어간 내용물의 크기가 너무 커서 결국 다시 다짐기(차퍼)에 넣고 잘게 썰어야 했다.



5. 그래서 안에 있는 내용물을 건져 모두 다짐기에 넣어 다시 잘게 썬 후 다시 넣었다!

처음에 재료 준비를 할 때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일이다. 칼로 어떻게든 잘게 썰었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한 칼솜씨로는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 이미 작게 썰려있는 재료를 다짐기에 넣으면 열심히 돌려도 이미 크기가 작아져 있는 상태로 쉽게 썰리지가 않는다. 그러니 부디, 읽으시는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으나,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본격적인 요리를 시작하시기 전에 미리 재료를 다짐기에 넣으시길 바란다.


6. 마침내 완성된 소스에 삶은 파스타면을 섞어준다.

소스를 넉넉하게 만들었는데, 그때까지는 "절반은 오늘 저녁에 파스타면과 함께 먹이고 절반은 보관해 두었다가 밥과 섞어서 리조또로 만들어 먹여야지"하는, (그래서 다음 날 저녁까지도 손쉽게 해결했으면 하는!) 소박한 야심이 마음속에 있었다.



야심


누구에게나 새로운 계획과 야심이 반짝이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마음과 같이 실현된 것은 그중에 어느 정도나 될까. 처음부터 허무맹랑한 것이었을 수도 있고, 말 그대로 노력이 부족했던 것일 수도 있고, 그냥 운이 나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난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기간에 대표팀의 선수 한 분이 꺼내든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가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것은, 굳이 통계를 내지 않아도 '희망하였으나 꺾여 버린 마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경험과 직관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꺾이지 않는 마음"이 일으킨 울림은, 실은 이미 늘어진 채 쌓여있는 꺾여버린 마음들과 부딪혀 만들어 낸 공명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고서야 야심과 야망에는 모두 '들 야(野)'자를 쓴다는 것을 알았다. 국립국어원에서 어원을 잠깐 찾아보다가 이내 그만두고 마음대로 상상해 보았다. 날 것 그대로인 야생(野生)의 소망. 야수(野獸)와 같이 거침없고 펄떡거리는 욕망. 광활한 들판(野)에 우뚝하니 서있는 희망. 그러다가 강한 바람 한 번에 스러져 날아가버리는 모습.


아이는 점잖게 있다가도 밥시간이 조금 지나 배가 고파지면 급발진을 한다.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에도 끓어오르는 시간이 있어야 할 것인데, 어찌 된 것인지 우리 집 아이는 아무런 전조가 없다가 이유식 그릇, 물컵 같은 식기류를 보거나 음식향을 맡으면 울음과 짜증을 내버린다. 그 울음소리를 번역하면 아마도 "아 맞다, 나 밥 먹을 시간인데 너희들!!"(실제로 아이는 화가 나면 "너희들"과 비슷하게 들리는 소리를 낸다. 아내가 종종 따라 하는데 아내가 따라 해 줄 때는 재미있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이 날도 아이에게 음식을 해 줄 시간까지 고려하여 산책 및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던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음식이 완성될 무렵 갑작스러운 분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야수(野獸)에겐 국제법도, 선전포고도 없다! 이미 그 순간에 "잘 먹이긴 힘들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배고파 죽겠는데 이렇게 씹어서 넘겨야 되는 음식을 준다고? 분유 내놔!" 모드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아이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파스타면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나마 당일에 해준 크림파스타는 조금 먹었던 것 같다. 다음 날 저녁 반 정도 남은 소스에 밥을 섞어서 만들어준 리조또는 거의 먹지 않았다. 뱉어낸 밥알과 함께 나의 소박했던 야심도 거부당해 흩어진다.


사진은 그럴듯하게 남았고, 해 준 음식은 그냥 많이 남았다.


사진은 그럴듯하게 남았고, 음식은 먹지 않아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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