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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동KimLawdong Jul 26. 2023

일기 : 루틴과 그때그때

방식이야 어쨌든

밤 중에 열어 둔 창으로 빗소리가 들렸다. 애써 무시하고 자는데(들었으면 닫아야지!), 아내가 일어나 창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곧 다시 잠들었다 잠시 깼는데 휴대전화 시계를 보니 4시 20분 정도였다. 한 시간은 더 자도 되겠다 싶어 다시 눈을 붙였고, 정말로 한 시간 정도 뒤에 눈을 떴다.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포털 뉴스 메인을 뒤적뒤적하다 5시 40분에 양말을 신고, 줄넘기를 들고 집 앞 놀이터로 갔다.


베타테스트처럼 짧게 맛만 보았던 1인 사무실을 정리하고, 내일부터는 새로운 사무실로의 출근을 앞두고 있다. 일이 많은 곳이라 하여 미리부터 걱정이 되었다. 출근을 앞두고 아침 루틴을 어떻게 정하면 좋을까 생각해 보다가, 6시 정도에 일어나 30분 정도 운동을 하고, 씻고 나서 아이의 아침을 챙겨주고(아이는 보통 6시 40분 전후로 깬다.), 출근 준비를 하고 출근하면 어떨까 하고 계획을 짜보았다. 출근은 내일부터지만 하루 전인 오늘부터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이런저런 스텝으로 줄넘기를 했다. 30분 정도 시간이 지난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땀으로 흠뻑 젖은 흉한(?) 몰골이었지만 아침 이른 시간이라 마주치는 분들은 거의 없었다. 갈아입을 옷을 옷장에서 챙겨 나와 화장실로 가 샤워를 한다.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문득 로스쿨 3학년 때 병원에서 상담받은 일이 문득 생각났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늘 그렇듯 요즘은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시며 상담을 시작하셨다. 나는 기분은 괜찮은데 너무 졸리고 피곤하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선 졸릴 만큼 약을 처방하지 않는데 의아해하셨다. 나는 마시던 커피를 끊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고, 선생님께서는 무슨 이유가 있냐고 되물으셨다.


이유인즉슨, 대략 이런 논리구조였다.

- 변호사시험 당일에는 (화장실에 가면 그만큼 시간리 줄어 불리하므로) 화장실에 가지 않아야 한다.

- 커피를 마시면 화장실에 자주 가고 싶어 진다.

- 그러므로 변호사시험 나흘 간은 커피를 마시지 않을 것이다.

- 그런데 시험을 준비하고 연습할 때에는 평소에도 시험 당일과 최대한 비슷한 환경과 루틴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 평소 커피를 계속 마시다 당일만 끊으면 당일엔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

- 그러니 지금, 미리부터 연습을 해서 커피를 끊어보려고 한다.


나의 이야기를 다들은 의사 선생님께선 웃으시고는 당일에 화장실에 자주 갈까 봐 겁이 나면 그냥 당일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큰 시험을 보는데 그날 커피 안 마셨다고 졸거나 잠들 일 같은 것도 없을 거라고 덧붙이셨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그날부터 다시 커피를 마셨다.


그때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들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역시 다시 커피를 마시니 졸리지 않는다, 커피는 맛있다!”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러다 오늘 아침 문득 이 에피소드가 (잘못된 연결이 이루어진) 루틴에 대한 일종의 강박에 대한 일일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규칙적으로 하는 일은 일단 체화되면 이점이 많다. 결정하는 데에 시간을 들일 필요 없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행동을 결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루틴을 세우는 인간은 때론(혹은 주로) 비합리적인 사고에 빠지기도 한다(루틴 자체는 죄가 없다!). 여기서 한 발짝 벗어나면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기도 하고(이걸 못했으니 다 망쳤어!), 나의 커피 사례처럼 따지고 보면 성과 달성과 크게 상관없는 불필요한, 과도한 목표와 규칙을 세우기도 한다(행동과 결론 사이에 ‘연결을 위한 다리‘가 매우 많이 필요할 때가 많다.).


때때론 모든 것을 사전에 규칙화할 필요는 없고, 그냥 그때그때에 맞게 행동하면 충분한 경우도 많다. 시험 나흘 동안만 끊었던 커피처럼 말이다.


루틴화하고자 하는 행동으로 오늘 하루를 열었다. 규칙이 자리 잡으면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어려움이나 불안감 같은 것이 한층 줄어들고 가벼워질 것이다. 그렇지만, 때론 혹은 종종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나 자신이 세운 규칙을 받들어 모실 필요도 없을 것이다(이미 새로운 곳에서 일하기로 한 것 자체가 일상에선 벗어난 것이다.).


방식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건강하고 행복한 규칙과 습관이라면 지키되 아닌 것은 버리기도 해야 한다.


루틴과 그때그때 사이에 있는 건강하고 행복한 길을 향해!


그냥 마셔도 빵이랑 먹어도 맛있는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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