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간 강남의 고시텔에서 살았던 기억을 톺아봤다
사람들은 고시원을 머무는 곳이 아닌, 더 활짝 펴기 위해 웅크리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옹기종기 모여 있기 때문에 다양한 관계를 이룰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로 모든 관계를 단절한다. 고시원 주인도 이름을 묻지 않는다.
나는 2013년 2월 말부터 5월 말까지 약 3개월간 고시텔에서 살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비슷한 시기에 힘든 일도 있었던 터라 멘탈이 많이 약해져 도피 겸 홧김에 지원한 서울의 작은 회사에 입사를 했다. 작은 회사였고 급여도 세후 90 만원으로 매애애우 짰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골 방구석의 사회초년생은 생각 없이 고시텔에 방을 잡고 바닥부터 일을 배운다는 마음으로 상경을 했다.
당시 방값은 월 37만원.(더 비쌌는데 오래 지낼거라고 말해서 2만원 깎았다.) 몇 호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 입실 전에 기물파손에 관한 간단한 서약서를 작성하고 보호자와 내 이름을 적었다. 딱히 입실하는 이유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기계적으로 서류를 내밀고 돈을 받고 도장을 찍어주고 영수증을 받는게 끝이었다.
내가 살던 곳은 신사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고시텔이었는데 은근 고시텔들이 몰려있는 골목이었다. 예전부터 고시원, 고시텔의 개념은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 생각해 굉장한 정숙을 요하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위치가 위치인지라 왜 여기 고시텔이 많은지 궁금했다. 나중에 알게됐지만 수험생보다는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이 뭐 생각보다 그렇게 조용히 지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우선 남자층에는 일용직 노동자 아저씨도 살았고, 재수생인지 고시생인지 모를 방에서 게임만하는 학생도 있었다. 나처럼 사회 초년생들은 거의 없었다. 여자층은 내가 갈 수 없으니까 취사실에서 오며가며 본 사람들로만 말해보자면 아이와 함께 사는 젊은 여자와 지나칠 때마다 향수 냄새가 몹시 짙었던 분들도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보다 한두달 먼저 들어온 대학교 친구(애초에 여기 들어올 때 이 친구의 소개로 들어왔다.)도 있었다. 나는 이 친구랑 자주 놀았는데 내가 버티지 못하고 먼저 뛰쳐나왔다. 이때 그냥 문득 마늘과 쑥만 먹고 사는 곰과 호랑이 같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내가 호랑이). 그리고 몇 달 뒤 그 친구도 자취를 위해 방을 나왔다고 들었다.
생각해보면 당시 시간이 그렇게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회사는 10 to 7 이었고 눈치보다가 대애충 오후 7시 30분에서 8시쯤 퇴근한 뒤, 걸어서 고시텔에 도착하면 대략 오후 8시에서 8시 20분 정도였다. 고시텔 취사실에는 항상 라면, 밥, 김치, 계란(은 인기가 많아서 자주 없었다)이 있었는데 퇴근 길에 커피나 군것질 거리랑 라면에 넣어먹을 뭔가를 사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라면을 좋아하기도 했고 방값이 아깝기도 해서 돈도 아낄 겸 취사실에서 자주 해먹었고 간편하고 좋아하다보니 밥 먹는 것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후에 설거지하고 씻고 티비를 보다보면 밤 12시, 1시가 금방이었는데 그 때는 생각해보면 정말 뭔 생각으로 살았는지 모르겠다. 지금처럼 자기개발 같은 생각은 개뿔도 없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뒹굴대다가 잠들기 일쑤였다.
주말에도 방 안에 짱박혀서 노트북으로 영화나 보고 그냥 잠만 잤던 것 같다. 그 때 어쩌다 직장 생활을 오래한 선배를 만나 한 잔 했던 날이 있었는데 '저 고시텔 산다'고 하니까 '고시원 같은 데는 사람을 쳐지게 만들어.'라고 했었다. 그 말이 사실이었는지 아니면 그 말에 영향을 받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후부터 확실히 쳐지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고시텔 안에 필요한게 다 있어서 그랬는지 쉬는 날 조차 밖으로 잘 안나갔다.
아주 가끔 진짜 바람이나 쐬러 갈까 싶으면 길 건너에 있던 가로수길에 갔다. 사람 구경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였는데 세 달 정도 살면서 고작 두 세 번 갔던게 전부였다. 휘황찬란한 사람들과 자동차들 때문에 주눅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길만 건너면 세상이 달라지는데 뭐하고 있는건지 싶은 자괴감도 가끔 들었고. 그래도 나름 강남이라 근처를 자주 돌아 다녔으면 뭔가 보는 눈이 좀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약간은 아쉬운 마음도 든다.
고시텔에 들어가기 전, 한참 방을 알아볼 때 주위에 고시텔 얘기를 하면 그 작은 방들 중에서도 창문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그 느낌이 많이 다르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건물 밖으로 아주 작은 외창이 나 있는 방을 잡았었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방보다는 덜 깝깝하지 않을까 싶었다. 고 믿는다. 믿고 싶다. 그래야 내 방 값이 안 아까울 것 같다.
그래도 창문이 있어서 출근하려고 일어났을 때 날씨가 어떤지 알 수 있는게 제일 좋았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였고 한창 봄일 때는 창문을 열어두면 선선한 바람도 가끔 불었다. 나중에 미세먼지 가득 쌓인 좁은 방을 보고 후회하기도 했지만.
고시텔 옥상에 올라가는 것도 좋았다. 7층 정도 되는 건물이었는데 6, 7층과 옥탑까지 고시텔 방이었다. 옥탑방은 다른 방들에 비해 조금 더 넓었지만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을 7층까지 올라가는건 진짜 힘들 것 같아 포기했다. 취사실에서 믹스커피를 타가지고 옥상에서 바람 쐬며 홀짝대다가 내려오면 좀 기분 전환이 되는 것 같아 맨날 퇴근하면 저녁먹고 샤워하고 커피타서 옥상가는게 하루 일과였다.
옥상에서 멀리 보고 있으면 가로수 길 근처에 불이 꺼지지 않는 높은 빌딩들도 많았다.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그 건물을 보며 호기롭게 얼른 돈 벌어서 저 쪽으로 가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박봉이긴 하지만 나름 큰 건물에서 야근하는 직업으로 살고 있으니 얼추 비슷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그때 고연봉에 워라밸을 지키는 일을 해야겠다 다짐했어야 했다).
고시텔에는 방마다 티비가 있었다. 작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크지도 않았다. 화질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냥저냥 볼 수 있을 정도의 싸구려였다. 티비는 공중파랑 몇 개의 케이블 채널이 나왔었다. 퇴근하고 아무것도 안하면서 혼자있으면 그 적적함이 너무 싫었는데, 딱히 볼 것도 없지만 티비를 켜두면 그나마 그 적적함이 조금은 사라졌던 것 같다.
퇴근해서 잠들기 전까지 예능은 물론이고 당시 밤 늦게 나오던 다큐멘터리도 자주 봤다. 어떤 주말에는 잠시 나갔다가 저녁으로 와퍼랑 맥주를 사들고 방에 들어와 무한도전을 보면서 먹었는데, 당시에 무한상사에서 정준하가 정리해고 당하면서 '서른즈음에'를 불렀다. 햄버거 우물대면서 그 좁은 방에서 그 편을 보며 괜히 노래가 서글퍼 울었다. 일요일에는 KBS의 '다큐 3일'과 '드라마 스페셜'이 연속으로 편성되어 있었던 것이 그 때 아주 쏠쏠한 재미였다. 월요일을 앞두고 잠잘 준비를 마친 후 켜 놓고 누워서 보고 새벽 1시 쯤 자면 딱 맞았다.
공부를 하는 고시원은 더 그렇겠지만 이 좁은 공간은 어쨌든 맨 위에서 했던 말처럼 음울하고 부정적인 느낌이 강한 것은 진짜인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처한 사람의 사연이나 상황 나름이고, 나는 그 어린 나이에 호기롭게 세금 떼고 한 달 90만원을 받으며 고시텔에서 세 달을 살았었다. 지금 살라고 하면 살 수 있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는데, 지금은 절대 못살지. 안산다. 무슨 낙으로 살겠냐.
솔직히 의지가 엄청 나약한 나로써는 그 당시 그 곳에서 세 달이나 산 것도 대단하다 생각하지만, 이제와 더듬더듬 돌아보면 나름대로 재밌기도 했었다. 아마 세 달 밖에 살지 않아서 그냥 좋은 기억만 남아 괜찮았다고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더 살아보면, 그리고 더 살고 있는 사람들은 또 다른 생각이겠지. 솔직히 주변 환경도 그렇고 사는 사람들도 그렇고 사실 좀 더 지냈다면 더 다양한 일들을 경험했을 것 같다. 나에게는 고시텔이 마냥 우울하고 부정적인 공간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