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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률 Apr 24. 2023

도전하지 않을 용기

나는 그만둘 용기도, 시작할 용기도 없는데 뭘 할 수 있을까.

‘90년대생들’이 올 때까지만 해도 내가 바로 그 ‘요즘 애들’이었고 우리 팀의 첫 90년대생이었다. 그런데 이제 ‘MZ세대’가 등장하면서 나는 ‘요즘 애들’ 축에 끼지 못한다. 뉴스 기사를 보면 그들은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원하던 삶을 찾으러 퇴사한다고 한다. 나 때는 그래도 최소 1년, 아니 3년은 버텨야 한다고 했었는데. 


두 살 아래 친동생만 보더라도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2년을 채우지 않고 퇴사했다. 동생은 방송 아트팀에서 1년 반 정도 일하다가 지금은 개발자 지망생이 되었다. 받는 월급에 비해 일주일 내내 밤낮없이 고생하는 것 같아 누나로서는 퇴사를 응원하긴 했다. 그래도 그렇게 금방 퇴사할 줄은 몰랐지.


첫 회사에 들어가려고 동생이 포트폴리오와 면접 준비를 열심히 하던 걸 옆에서 봤다. 처음 인턴으로 일할 때 무대 시안을 준비하며 눈을 반짝이던 것도 봤다. 그랬던 애가 지금은 코딩 수업을 듣고 있다니. 개발자가 되는 것도 비전 있고 좋은 진로이지만 열심히 했고 좋아했던 일을 그만두고 맨땅에 헤딩을... 곧 서른을 앞둔 때에 새 출발은 나에게 무모해 보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무모해 보이는 그 도전이 내 깊은 마음속에서는 부러웠다. 그렇게 그만두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멋졌고 나도 조금은 나눠 갖고 싶었다. 책 <요즘 것들의 사생활: 먹고사니즘> (이혜민, 900KM)을 보면, 돈벌이와 상관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마이너 취향의 잡지를 만들어 팔거나,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잼을 만들어 파는 등 자신이 원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또래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가진 게 없는 현실을 핑계 삼지 않았고, 가진 것을 잃을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위인도, 인생 경험이 많은 어른도, 겁 없는 어린 학생도 아닌 또래 친구인데 내가 갖지 못한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난 그 용기가 너무 부러웠고, 열등감마저 느꼈다.


그들에 비해 나는 좋아하지도 않고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 일을 돈 때문에 하고 있다. 20대 초반부터 주변에서는 취업 준비를 시작하는 분위기였고, 나도 동기들을 따라서 별 고민 없이 진로를 정했다. 나는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그 어떤 것도 경영할 생각이 없어서, 나의 노력에 비해 돈을 제일 잘 벌 수 있을 것 같은 직업을 갖기 위해 자격증 공부를 했다. 


다행히 자격증을 따긴 했지만 내 예상보다 노력은 더 필요했고, 쳇바퀴를 열심히 돌려야 상상한 월급도 받을 수 있었다. 자신의 길을 직접 만들어가는 또래를 보면서 내가 돌리고 있는 이 쳇바퀴가 부끄러워졌다. 나도 내가 원했던 길을 찾아 떠나야 할까. 내가 원했던 길이 애초에 있긴 했나. 나는 그만둘 용기도, 시작할 용기도 없는데 뭘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난 밥벌이하는 내 ‘본캐’를 레벨 업 하려고 아등바등하는 건 그만하고, 스스로 뭘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는 날 위해 작은 여러 ‘부캐’들을 키워보기로 했다. 


하던 일을 그만두지 않고, 거창하게 새 출발을 하지 않아도 쳇바퀴 밖의 삶을 맛볼 자격은 충분하다. 그래서 요즘에는 시간이 나면 수세미를 뜬다. 기본 뜨개질만 배워도 꽃 모양 수세미, 동물 모양 수세미를 뜰 수 있다. 덕분에 내가 예상외로 손으로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까지 주력으로 키워온 캐릭터를 삭제할 용기는 없다. 그렇다고 자기 역할을 잘하고 있는데 굳이 키워온 캐릭터를 버리고 새 시작을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본캐’가 벌어온 돈으로 수세미 실을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으니까.


멈추지 않고 쳇바퀴를 돌리는 데에도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고 꿈이 아닌 일을 그만두지 않고 지속하는 데에도 매일 용기가 필요하다. 꿈에 도전하지 않았다고 해서 30년째 구두를 수선하고 계시는 회사 앞 구둣방 사장님을 용기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도전과 꿈을 신성시하는 분위기에 휩쓸리기보다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을 찬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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