률씨는 열심히 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스스로에 대한 잣대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몸도 마음도 편할 거예요. 스스로는 대충 한 것 같아도 남들이 볼 땐 그렇지 않을 거예요.
매너리즘, 번아웃, 불안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 뒤섞여서, 아무리 풀어도 그렁그렁한 코처럼 마음이 갑갑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갔던 심리상담센터에서 선생님이 해준 조언이다. 흠, 열심히 하지 말라니요?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요? 열심히 하는 거, 버텨서 어떻게든 해내는 걸로 자격증도 따고 입사도 한 건데… 그걸 안 하면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는걸요.
버티는 걸 잘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안 힘든 건 아니에요. 남들은 진작 그만뒀을 환경에서도 버텨내는 건 스스로를 위하는 게 아니에요. 률씨는 지구력은 좋지만 끈기는 부족한 사람이니 앞으로는 하기 싫으면 그냥 그만둬 보세요.
아, 그렇지 나 좀 미련한 구석이 있었지. 아플 때 시험공부 하루 안 한다고 큰 일 나는 거 아닌데 굳이 학교 도서관까지 가서 공부 시간을 채웠었지. 이걸 보고 지구력이 좋다고 하는가 보구나. 금사빠면서 싫증도 잘 내는 건 끈기가 없어서 그런 거겠지? 음, 그럼 앞으론 싫증 났어도 계속해보려고 하지 말고 그냥 그만두면 되겠구나. 그건 잘할 수 있지.
좋아하는 게 있어요? 요즘 관심 가는 거? 아, 글쓰기를 좋아해요? 그럼 작가 수업 같은 걸 들어보세요, 다만 결석하고 싶을 땐 결석도 하고 그만두고 싶을 땐 그만두세요. 일 말고 해보고 싶었던 걸 다 시도해 보세요. 잘하려는 부담은 내려놓고.
음, 사실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도 겨우 대답한 거였다. 마침 보고 있던 드라마가 너무 재밌어서 나도 저런 거 하나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길래 선생님께 그렇게 대답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해보고 싶던 걸 하라는 건 꽤 힘든 숙제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소개서에 쓸 한 줄이 아닌 순수하게 재미만을 위해 했던 게 있었던가?
중학교에서 전교권을 유지해서 좋은 고등학교를 가고, 괜찮은 대학에 들어가서 공인회계사시험을 학교 생활과 병행하며 합격할 때까지, 열심히 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좋은 부모님을 둔 덕에 다른 걱정 없이 난 달리기만 하면 됐다. 입사 후에도 하던대로 달리려 했는데, 삐그덕. 무릎이 아프고 숨이 찼다. 예전엔 몸이 가벼웠던 것 같은데 수험생활을 3년 넘게 하고 바로 입사까지 해버리니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온몸이 무거웠다.
음, 그래 그럼 이젠 앞으론 달리는 것 말고 모래주머니를 벗어던지는 걸 열심히 해보면 되겠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하자. 아무것도 열심히 하지 않는 인생은 살아 본 적이 없으니, 대충 해보겠다는 선생님과 약속만큼은 열심히 지켜보겠다. 지금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도, 나는 금방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사람이니까, 뭐든 대충 하다 보면 사랑에 빠지고 마음도 한결 편해질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