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에 우리 부부는 캠핑과 가까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렇게 6월 내내 서울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읽고 쓰고 운동하고 춤추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대전에 오게 되었다. 비시즌 중에도 최고로 비시즌인 6월 중순에 파트너님이 용역 계약을 따오신 거다.
요즘 회계 업계가 불황이라고 했는데 새로운 일을 따오시다니? 불황이기 때문에 요즘 유독 영업에열심이신 것 같다.
사실 나는 로컬에서 반개업 상태이니까 비시즌에 일이 들어온다고 억울하거나 화날 건 하나도 없다. 하는 만큼 돈을 버는 거니까조금 덜 놀고 더 벌 수 있는 기회다. 월급쟁이 빅펌 시절이었으면 화가 단단히 났겠지. '다 너한테 도움 되는 일'이라는 이유로 남은 연차 휴가를 소진해야 하는 6월에 갑자기 휴가 일정을 취소해야 했던 빅펌 동기들이 종종 있었다.(마감을 6월에 하고 연차촉진제를 도입한 법인이어서 6월이 지나기 전에 연차 휴가를 모두 써야 했다. 안 그러면 보상을 못 받음!)
5월 말에 캠핑장에서 고기를 굽고 있을 때 파트너님께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일을 하게 되었으니 팀원으로 참여해 줬으면 좋겠다고.
"네,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어차피 하게 될 일이라면밀당 없이 흔쾌히 수락해야 한다는 게 8년의 사회생활을 통해 경험한 바였다.
그런데문제는, 출장 일정이 한창 놀아야 하는 6월과 9월이라고 하셨다. 빅펌러 남편이 소진해야 하는 연차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그때가 다른 회계사들도 일이 없는 비시즌이니까 새로운 스케줄이 비집고 들어오기 딱 좋은 때긴 하다.
파트너님께서 6월 마지막 주까지 필드 일정을 고민 중이라는 말씀에는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했다. 결혼하고 회계사 부부가 맞는 첫 비시즌인데, 연차도 써놨는데, 출장에 가고 싶진 않았다. 물론 우리가 어디서 뭘 할지 미리 정해놓는 사람들이 아니긴 하지만 일을 할 계획은 추호도 없었다.
파트너님은 흔쾌히 스케줄을 조정해 주셨다. 원래도 배려를 잘해주시는 분이고 안 그래도 신혼부부들을 몇 주씩 타지로 보내야 해서 신경 쓰여하시던 터였다. 다른 팀원도 나와 결혼기념일이 하루 차이 나는 신혼이셨다. 재밌게도 회계 결산 쪽에서 일하는 분들은 결혼식을 결산 일정에 맞추기 때문에 결혼기념일이 다들 비슷하다.
결혼 후 6개월 동안 지금이 다섯 번째 출장이다. 많은 건 아니지만 적지도 않은 횟수이다. 신혼인데 출장을 가도 괜찮냐고 주변에서 물어보시는데, 신혼이어서 안 괜찮을 건 없다. 오히려 매일 보다가 안 보게 되니까 연애할 때보다 더 보고 싶어 지는 효과가 있어서 좋다. 6년 넘게 연애할 때는 출장을 가더라도 주말에 보면 된다는 생각에 딱히 애틋하지 않았는데, 부부라는 이름으로 묶이고 나니 괜히 더 애틋해져서 연애초처럼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어 낯설었다.
남편은 내가 없는 동안 범죄물 드라마를 보고 있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지 않아서 남편 혼자 있을 때만 보는 프로이다. 각자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들이어서 이 시간이 적당히 애틋하면서 에너지도 충전할 수 있는 때이다. 나도 서울 집이었다면 퇴근 후에 남편과 누워 넷플릭스를 봤겠지만, 출장지 숙소에서는 요가도 하고 이북도 읽는다. 일이 들어온 덕분에 비시즌을 조금 더 알차게 보내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