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면서 헬스장에도 다시 기웃거려 보고 뿌리 염색도 했다. 얼핏 보면 작심삼개월 후 새 시작을 하는 모양새와 비슷하지만, 아예 다르다! 작심(作心)을 한 적이 없으니까. 3월 까지는 어차피 FY2023으로 넘어가지 않으니 새해 계획을 따로 세우지 않았었다.
"FY"는 회계연도 (fiscal year, financial year)의 약자이다. 한국의 많은 회사들이 1월 1일에서 12월 31일까지를 한 회계 기간으로 설정하다 보니 FY2022는 보통 2022년 1월 1일에서 2022년 12월 31일까지를 말한다. 그래서 2022년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Audit)는 "FY22 감사"라고 말하기도 하고, 2023년 1분기는 "FY23 1Q"라고 표시할 수 있다.
3월까지는 "결산일: 2022.12.31", "2022년 말", "FY22"를 조서마다 쓰다 보니 겨울 내내 2023년이 "내년"같고 2022년이 "올해" 같았다. 감사인 입장에서는 FY2022 기말 감사를 하는 것이니 2022년이 "당기"가 맞긴 하다. 그래서 정신없을 땐 회사 회계팀 담당자님께 다짜고짜 "전기 대비해서 당기에 광고비가 줄었나요?" 같은 질문을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면 담당자님은 당황하면서 "저희 올해 2월에 광고 크게 하나 했는데... 아, 당기가 2022년 말씀이시죠?"라고 답하신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담당자님이 말씀하신 올해 2월의 광고는 나와 관련 없는 미래의 일 같았는데, 어느새 눈앞에 닥친 일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이제 "FY2023 1Q"를 검토할 때가 되어버렸으니까. 큰 회사들은 분반기에도 "검토 (Review)"를 받는데, 간단히 말하면 기말감사보다는 요구하는 것도 덜 빡세고 신뢰도도 낮은 절차이다. 12월 말 기준 감사보고서를 3월까지 내고, 3월 말 기준 재무제표를 4월부터 검토하는 순서이다.
그래서 잠깐 숨 돌린 후 4월에 출근을 할 때면 동영상 편집기에서 '자르기'를 한 것처럼 내 3개월이 사라진 느낌이다. 왜 갑자기 2023년 3월 말이지? 벚꽃이 왜 만개한 거지? 꽃다운 청춘의 3개월이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서 처음엔 조금 억울했다. 겨울 내내 열심히 돈을 번 셈이긴 한데, 그건 다 모르겠고 그냥 그 3개월이 아까웠다. 겨울 스포츠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스키장을 못 가는 것과 안 가는 건 기분이 다르니까.
안 놀고 자기 개발을 열심히 해보려 해도 1년 내내 뭔가를 꾸준히 하는 게 참 어려웠다. 자정에 하는 퇴근이 일찍 하는 퇴근이다 보니 영어학원이든 헬스장이든 겨울까지 꾸준히 다니는 건 웬만한 강철 체력이 아니면 엄두를 못 내는 것 같다. 일단 난 못한다.
아무리 바빠도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니 '나는 겨울에도 내 인생을 살아볼 테야!'라는 마음가짐을 몇 년째 열심히 가지고는 있다. 이번 겨울에만 해도 브런치를 매주 쓰겠다는 열정이 뜨거웠는데 일이 몰리다 보니 한 달 넘게 못 쓰게 되었다. 시간 여유가 없을 때는 스케줄 표가 꽉 찼어도 어떻게든 거기에 내 인생을 구겨 넣었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는 잠깐 시간이 남아도 일 외에는 손에 안 잡히더라. "나는 지금 연애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라는 말이 새삼 이해된다. 4월 중순이 지나도록 글을 못 올린 건, 그냥 게을러서...
지금은 전보다 억울함이 좀 덜 하다. 더 편한 곳으로 이직을 한 덕도 있고, 겨울엔 추워서 어차피 대단한 걸 할 것 같지도 않으니 돈이나 벌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회사 일에 치이지 않았더라도 "아이코, 눈 감았다 떴더니 벌써 봄이네! 새해 되고 한 게 없는데!"라고 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조상님들도 비슷했으니 작심삼일이란 말이 생기지 않았을까? 대신에 이제 남은 소중한 9개월, 더 촘촘하게 즐겨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