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부터 행복해라, 제발
"너부터 행복해라 제발. 희생이란 단어는 집어치우고." (드라마 「나의 아저씨」 中)
일터가 지방에 있었던 탓에, 10대 시절의 대부분을, 아니 설날과 추석 연휴를 제외한 모든 날들을 집에서 혼자 보냈다. 자연스레 누군가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었고, 사회에 나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지인들에게 자주 밥과 술을 사며 남들이 좋아할법한 이야기만을 하는 어느 무리에라도 들어가고픈 사람이 되어있었다.
막상 자신의 행복을 위한 외면과 내면의 꾸밈에는 한없이 무지했기에, 추운날 시작했던 사회인으로서의 첫 연애는 '사람이 매력적이지 않다'라는 이유로, 미처 다음 해 날이 따뜻해지기 전 장문의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로 끝나버렸다. 시간이 약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몹시라도 괴로웠다. 빨리 시간이 흘러가기 만을 바라며, 퇴근 후에는 매일 술에 취해 하루하루를 지워가는 날이 반복됐다. 그렇게 반년이 흘렀다. 어김없이 금요일 저녁 술에 만취해 잠이 든 뒤, 토요일 오전 겨우 일어나 눈을 비비며 거울을 봤다. 잠이 확 달아났다. 내가 알던 나의 모습이 아니었다. 생기없는 눈,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탓에 앙상한 팔과 다리, 그리고 유독 배만 볼록하게 나온 외계인이 거기 있었다. 아니다. 외계인도 이 몸을 보면 "우리 종족을 모욕하지 말라"며 외계 첨단 무기를 발사했을 것이다. '나를 떠난 그 사람은 이렇게 폐인처럼 지내진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 억울함이 살짝 밀려왔고 이제는 다른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순간 문득, 대학 시절 동아리에서 했던 달리기가 생각났다. 달리기를 안 한 지 몇 년은 되었기에, 구체적인 감각은 희미했지만, 달리기는 분명 기분을 환기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었다. 신발장을 뒤져보니 본가에서 가져온 아버지가 신었던 듯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아식스 러닝화 한 켤레가 나왔다. 자취방 근처에는 우이천이라는 조그마한 천이 있었다. 집 안에 굴러다니던 운동복을 대충 주워 입고 천으로 향했다. 대학생 때 그래도 하프마라톤 까지는 2시간 정도의 기록으로 완주해 본 경험이 있어 한 시간쯤은 거뜬히 조깅으로 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20분을 채 달리지 못해 머리가 핑 돌고 땀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비루해진 몸뚱아리를 원망하며, 시간이 될 때마다 운동화를 신기 시작했다. 그렇게 꾸준히 달리다 보니, 10km 대회는 50분 정도의 기록으로 완주할 수 있을 만큼의 몸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2018년이 마무리될 즈음, 대학교 러닝 동아리 홈커밍데이 행사에 OB로 오랜만에 참석했다. 아직 러닝 유행이 불기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후배들이 꽤 많았다. 풀코스를 뛴다는 것은 어떨까? 아마 다시는 뛰기 싫다고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후배들은 카운터펀치를 날리듯 뒷풀이 자리에서도 입을 모아 말했다.
"살면서 한 번쯤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내년이면 서른인데 무슨 마라톤이야. 무릎 나가 허허." 웃으며 넘겼지만, 마음 어딘가에서는 '더 늦기 전에 한 번쯤 도전해볼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결국 2019년 여름, 눈치 없게도 YB분들이 주축이 된 '불가능에 도전하라'라는 이름의 풀코스 훈련 준비반에 서른 살의 나이로 참여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원치 않았던 잦은 이사는 나를 변화를 극히 싫어하고 꺼리는 성격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변화 없는 삶은 익숙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행복도 결코 작은 행복이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종류의 행복을 만나려면 설령 새로운 불행이 찾아오더라도, 낯선 방향으로 나아갈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매주 일요일 저녁 훈련을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참석했다. 11월 대회를 목표로 했기에, 무더운 여름 내내 훈련이 이어졌다.
그렇게 숨 막히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대회 날이 다가왔다. 출발선에 서니 심장이 미칠 듯이 두근거렸다. 살면서 이러한 긴장감을 체험해 본 적이 있었던가.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와 함께 시작했고, 잠실에서 출발해 다시 잠실로 돌아오는 42.195km의 여정을 시작했다. 도착지인 잠실 주경기장 입구는 누군가의 완주를 응원하러 온 사람들로 빼곡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들은 모든 주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고 있었다. 응원을 받는 순간만큼은 너무나도 행복해서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과한 세레머니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누군가의 기분을 살피는 것도 아닌 오롯이 내가 좋아서 나온 행동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행복감이었다. 무사히 완주를 마치고 나서야 한 가지를 깨달았다. 변화는 여전히 낯설고 두려울 것이지만, 가끔씩은 해볼만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