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전화기를 아예 꺼놓고 잠을 청했었다. 오랜만에 휴가를 낸 하루인데 평일이라 습관적으로 출근 준비해야 할 시간에 눈이 떠졌다. 2025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부터 흐린 하늘에 비가 내린다. 우중충하고 흐리면서 비가 내리는 아침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는 걸 좋아한다. 전원이 꺼져있던 전화기의 전화기를 켜서 시간만 확인하고 창문 넘어 들려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이 들었다. 특별할 것도 없고 특별한 약속도 없는 날이었지만 여유롭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하루를 위해 휴가를 냈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오전 10시가 좀 넘어가고 있었다. 이불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누워서 이번에 넷플릭스에 올라온 <흑백요리사> 시즌2를 보기 시작했다. 시즌1을 인상 깊게 봤던 프로그램인지라 이번에도 볼만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을 했다. 보는 중에 쌓인 빨랫감이 생각이 나서 세탁기에 넣어둔 빨래를 돌리면서 보면 효율적이겠다 싶어 오전에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집안일도 동시에 하는 오전을 보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
20대 때는 쉬는 날에도 반드시 의미가 있거나 결과를 만들어 내는 행위들을 쫓기면서까지 하면서 보내야 쉬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30대가 되고 나서는 해야 할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아무것도 안 하거나 시간을 죽이는 행위들로도 시간을 보낸다. 빨래가 끝난 알림 소리가 울리자 바로 건조기에 세탁한 빨래를 넣고 건조하고 쌀을 씻고 점심 먹을 준비를 했다. 늘 먹던 것들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정리하고 있을 때 밖에 비가 그쳤다. 카페에서 책을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씻고 바로 나갈 준비를 했다. 대충 걸쳐 입고 가방에 <인간의 굴레에서> 책, 펜 그리고 립밤을 챙겨서 나왔다.
늘 가던 스타벅스에 갔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라 그런지 카페 안에는 빈자리가 꽤 있었다. 콜드브루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고 챙겨온 책을 꺼내는 찰나에 콜드브루가 나왔다. 한 모금 쭉 들이키니 샤워하고 나왔을 때 나른한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인간의 굴레에서>는 한동안 읽지 않다가 읽었는데도 재미있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서머싯 몸의 책과 글은 정말 매력적이다. 오후 5시경 어느새 까마득했다. 옷을 얇게 입고 나온 터라 배도 고프기도 하고 더 추워지기 전에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오전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서 초저녁을 보냈다. 방에 불은 다 끄고 은은하고 밝은 조명만 켜놓고 침대에서 꼼짝하지 않고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다가도 노래를 듣다가도 아무 생각하지 않다가도 머리에 스치는 생각을 붙잡아 생각하면서 보내기도 했다.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는 이렇게 보냈다. 시간을 죽이기도 했으며 흐리고 비가 내리는 날씨에 알맞게 보냈다. 그렇게 내일 세상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