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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모 Feb 27. 2024

못난 자식

우리 가족은 네 식구인데  동생은 20대 초반부터 직장 생활을 시작하여 독립한 지 꽤 되었고 지금은 세 식구와 살고 있다. 세 식구서 살다 보니 빨랫감은 매일 쌓여가고 설거지거리와 방청소는 매일 해도 넘치고 쌓인다. 가끔 방청소를 할 뿐 이 모든 일은 엄마가 모두 도맡아서 한다. 밥을 먹고 나면 나오는 설거지거리도, 매일 벗어내는 빨래와 세탁 후 개는 일도, 방바닥에 쌓인 먼지를 쓸어내고 닦는 일도 모두 엄마가 한다. 이렇게 보내는 일상과 엄마의 모습이 항상 익숙해져 있다. 그런 엄마를 보며 때때로 잔소리를 하거나 지적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바로 아들인 ‘나’다.


 우리 집은 꽤 좁은 곳에 살고 있다. 창문을 통해서 밤에 불빛도 잘 비치고, 밤이면 밖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소리도 잘 들리는 집이다. 집에는 건조기가 없지만 빨래를 널 수 있는 옥상과 같은 공간이 있다.


 엄마는 매일 챙겨보는 것이 있다. 바로 일기예보다. 빨래를 할 때가 다가올 때쯤 비소식이 있을 때 엄마는 근심으로 가득 찬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좁은 복도나 내가 지내는 방 안에 빨랫대를 펼쳐서 넌다. 그렇게 공간을 차지하고 걸리적거리는 것을 나는 매우 싫어해서 한 번씩 엄마한테 잔소리하거나 지적을 하는데 이 잔소리를 가장 많이 한다.


 평소처럼 주말을 보내는데 좁은 복도에 빨래가 널어져 있었고 빨래는 아직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 비소식은 크게 없었고 비가 올 것 같지 않은 날씨였다. 햇빛도 비추고 빨랫대가 무겁겠다 싶어서 옥상 쪽으로 빨랫대를 옮겼다. 옮기자마자 비가 조금씩 내리는 것이었다. 정말 작게 잠깐 내리는 비였지만 엄마는 비를 보고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짜증을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가장 싫어하는 습관이 하나가 있다. 그것은 옆에 사람이 들리도록 혼잣말을 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정말 싫어했다. 그런데 사실을 고백하자면 우리 엄마는 지체장애 판단을 받은 장애인이다. 머리는 알고 있는데 그 싫어하는 행동을 보일 때 나의 저급한 본성이 드러나고 만다.


 짜증을 내며 혼자 궁시렁 궁시렁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며 악마처럼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그 광경을 아빠도 보고 말았다. 그때 나는 잠깐 이성을 잃었던 것 같다. 평소 욕설은 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엄마를 주눅 들게 만들고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이후 한 마디를 서로 건네지 않고 나는 밖을 나섰다.


 밖을 나서고 걸으며 생각을 했다. 아빠에게 먼저 연락을 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했다. 어렸을 적 우리 아빠였다면 무서운 존재로 느낄 만큼 화를 내셨을 터인데 아빠는 이런 말을 했다. “엄마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란다. 가족이 감싸고 사랑하지 않으면 어디서 사랑을 받을 수 있겠니? “라는 말이었다. 그 연락을 본 나는 길을 걷다 감추기 어려울 정도로 눈물이 흘러내리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달려가 용서해 달라며 사랑한다고 말을 했다. 그 순간 또 눈에서 감출 수 없는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가 걸으며 생각을 했다. 사람은 말 하나로 한 사람의 영혼을 죽이거나 살릴 수도 있다는 생각과 평생 갚지 못할 은혜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라는 것이다. 그것을 오늘을 알아도 내일이면 또 잊고 마는 못난 자식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못난 자식을 그저 사랑하여 주시는 하나뿐인 존재가 바로 부모님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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